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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런 섬마을은 없었다…20초 만에 완판된 ‘바다 놀이터’

중앙일보

2026.09.02 13:00 2026.09.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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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칠천도 옥계마을. 고성만 안쪽 깊숙이 자리해 있어 호수처럼 물살이 잔잔하다. 마을 언덕에 칠천량해전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백종현 기자

거제 칠천도 옥계마을. 고성만 안쪽 깊숙이 자리해 있어 호수처럼 물살이 잔잔하다. 마을 언덕에 칠천량해전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백종현 기자

바다를 마주한 방갈로 5동의 30일치 예약이 단 20초 만에 끝났다. 한나절만 빌리는 해변 쉼터인데도 이 난리가 났다. 이름난 휴양지 이야기도 아니다. 주민이라야 100여 명, 경남 거제 칠천도 옥계마을에서 지난여름 벌어진 일이다. 주민 평균 나이 80세인 고요한 어촌에 요즘 젊은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 어촌의 평범한 일상을 여행상품으로 팔기 시작하면서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카약을 타고 통발을 건지고, 요트 위에서 노을을 본다. 물고기를 팔던 마을이 이제는 ‘바다에서 노는 법’을 판다.

파도 없는 ‘섬 속의 섬’
옥계항 부두에 있는 ‘선진호’. 국방과학연구소의 퇴역 해상시험선인데, 옥계마을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백종현 기자

옥계항 부두에 있는 ‘선진호’. 국방과학연구소의 퇴역 해상시험선인데, 옥계마을에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백종현 기자

옥계마을은 거제도 북서쪽 칠천도에서도 외진 ‘섬 속의 섬마을’이다. 거가대교를 지나 칠천도 안쪽으로 20분 넘게 들어가야 나온다. 고성만 안쪽에 들어앉은 마을이어서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주변 섬과 육지가 방파제 역할을 해 최근 거제 폭우에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단다.


400여 년 전 이 바다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정유재란 때 원균이 이끈 조선군이 일본군에 참패한 칠천량해전(1597)의 무대가 바로 이 앞바다다. 마을 언덕에 당시 역사를 전하는 칠천량해전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옥계해변은 여름 한철 경남권 피서객만 알음알음 찾는 곳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전란의 상처를 품은 바다에 카약과 요트가 오가고, 젊은 여행객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23년 마을 전체를 이른바 ‘어촌 리조트 어기야디어차’로 꾸린 뒤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어촌 리조트라고 해서 호텔이나 리조트가 들어선 건 아니다. 마을 협동조합을 세우고 통발낚시·요트·카약 같은 놀거리를 들여놓자 파리 날리던 마을 민박과 식당에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거제 칠천도 옥계마을 서정영 이장(뒷줄 가운데)과 주민들. 요즘 유행하는 ‘거제 야호’ 포즈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백종현 기자

거제 칠천도 옥계마을 서정영 이장(뒷줄 가운데)과 주민들. 요즘 유행하는 ‘거제 야호’ 포즈를 하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백종현 기자

고령화와 어획량 감소로 멈춰가던 마을의 시계를 다시 움직인 건 청년 이장 서정영(45)씨다. 그는 17년 몸담은 대기업 조선소를 박차고 2021년 귀향한 뒤 주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물고기 파는 어촌이 아니라 놀거리를 파는 체험마을이 돼야 합니다.”


“물고기만 잡아선 못 산다”
거제 칠천도 옥계 해수욕장 방갈로. 봄가을에는 주말에만 운영한다. 백종현 기자

거제 칠천도 옥계 해수욕장 방갈로. 봄가을에는 주말에만 운영한다. 백종현 기자

지난해 갯바위에 설치한 방갈로 5개가 마을의 명물이다. 그때만 해도 “8만원(여름 성수기 기준)씩 내고 누가 해변 오두막을 빌리겠냐”고 못마땅해 하는 주민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약을 못해 아우성이다.


변화는 마을 방문객 수에서도 드러난다. 3년 전과 비교해 해변 방문객이 3배가량 늘어 연 3만명에 이른다. 주민 시선도 달라졌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주차장 관리부터 해수욕장과 마을식당 운영까지 역할을 나눠 손님을 맞는다.


옥계해변은 사계절 놀이터로 변신 중이다. 가을(9~10월)과 봄(3~6월)에는 갯벌 체험과 통발 낚시를 즐긴다. 갯벌 품은 어촌이야 전국에 널렸지만, 옥계마을의 노는 법은 좀 다르다.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며 놀다가 요트 위에서 일몰을 보고, 카약을 저어 바다로 나가 통발을 건진다.
거제 옥계해변에서 카약과 통발낚시를 즐기는 모습. 주변의 섬과 육지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 물살이 잔잔하다. 마을에서 카약과 요트 투어 등을 운영한다. 백종현 기자

거제 옥계해변에서 카약과 통발낚시를 즐기는 모습. 주변의 섬과 육지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해 물살이 잔잔하다. 마을에서 카약과 요트 투어 등을 운영한다. 백종현 기자


여름(7~8월)에는 해상 워터파크와 수상 레저를 운영하고, 겨울(11~12월)에는 해녀가 갓 잡은 전복·굴 같은 해산물을 방갈로에서 맛보는 ‘해녀 다이닝’을 연다. 이렇게 엮은 체험 상품이 올해 해양수산부 우수 해양관광상품에 선정됐다.


지난달 24일 옥계마을을 찾았다. 옥계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젊은 분위기를 실감했다. 한국관광공사 부산울산경남 지사가 초청한 20∼30대 여행 인플루언서 16명도 마을을 찾았다. 부산에서 온 20대 참가자는 “광안리·해운대와 다르게 한적해서 좋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하스민은 “한국에 이만큼 안전하고 예쁜 해변이 없다”며 “벌써 네 번째 방문”이라고 말했다.


갯벌에서 일하고, 요트에서 쉰다
카약과 통발 낚시 체험 후 건져낸 해산물을 즉석에서 구워 먹었다. 이날은 도다리·문어·뿔소라 등이 딸려 올라왔다. 백종현 기자

카약과 통발 낚시 체험 후 건져낸 해산물을 즉석에서 구워 먹었다. 이날은 도다리·문어·뿔소라 등이 딸려 올라왔다. 백종현 기자

카약을 물에 띄웠다. 원래 잔잔했던 바다가 해수욕철이 끝나 더 얌전했다. 한쪽에서는 부표를 반환점 삼아 속도전을 벌였고, 다른 쪽에서는 주민이 미리 내려둔 통발을 끌어올리며 손맛을 즐겼다. 통발에 걸린 문어·도다리·장어가 그대로 점심 메뉴가 됐다. 모닥불에 생선을 굽고 라면에 문어를 넣고 끓였다.


옥계마을과 씨릉섬을 연결하는 씨릉섬 출렁다리가 2024년 개통했다. 백종현 기자

옥계마을과 씨릉섬을 연결하는 씨릉섬 출렁다리가 2024년 개통했다. 백종현 기자

씨릉섬 안쪽으로 1.5㎞의 산책로와 전망대, 미니 짚라인 등이 조성돼 있다. 백종현 기자

씨릉섬 안쪽으로 1.5㎞의 산책로와 전망대, 미니 짚라인 등이 조성돼 있다. 백종현 기자

해변 맞은편에 독특한 이름의 ‘씨릉섬’이 있다. 옥황상제의 딸 옥녀가 ‘씨릉씨릉’ 거문고를 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무인도다. 거문고 뜯는 소리가 이름이 된 섬이라니. 처음 봤다. 수십 년간 무인도로 남아 있다가 이태 전 출렁다리와 1.5㎞ 산책로를 조성하며 옥계마을의 신흥 명소로 거듭났다.

200m 되는 짧은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해변과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사람, 미니 짚라인을 타며 환호성을 지르는 어린이도 있었다. 섬 끝 전망대에 오르니 칠천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옥계마을은 원래 당일치기 여행지였다. 놀거리가 늘면서 체류형 여행자가 많아졌고, 마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펜션도 덩달아 손님이 늘었다. 언덕 위 펜션, 출렁다리 조망이 좋은 펜션, 잔디밭과 수영장을 갖춘 펜션 등 숙소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카약과 통발 체험으로 시작한 일정이 저녁 바비큐 파티를 거쳐 이튿날 아침 해변 요가까지 이어졌다. 주민 이선희(73)씨는 “평생 여기서 산 나도 어촌에 이렇게 놀거리가 많은 줄 몰랐다”며 “젊은 손님이 사계절 찾아오니 동네에 다시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젊은 여행자들이 옥계항 ‘큐브스테이’ 잔디밭에서 모닝 요가를 즐기고 있다. 백종현 기자

젊은 여행자들이 옥계항 ‘큐브스테이’ 잔디밭에서 모닝 요가를 즐기고 있다. 백종현 기자

촬영정보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가을철 체험 프로그램은 주말에만 운영한다. 갯벌 체험(요트 포함)과 통발 체험(카약 포함)은 각 1만8000원, 방갈로는 하루(오전 10시~오후 5시) 6만원. 기상과 물때에 따라 체험이 어려울 수 있어 예약 전 문의가 필수다. 0507-1415-9440. 마을 협동조합의 숙소(6곳)를 이용하면 갯벌 체험비를 3000원 아낄 수 있다. 씨릉섬과 칠천량해전공원 입장료 무료.




백종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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