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키롱에 온 최초의 유럽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에 가득 찬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한 농부의 집에 묵었는데, 그 집은 티롤 지방의 집을 떠올리게 했다. 마을 전체를 알프스에서 옮겨온 것 같았는데, 굴뚝 대신 집 지붕에 기도 깃발(오색 룽다)이 걸려 있다는 것만 달랐다.”
하인리히 하러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키룽을 “행복의 마을(the village of happiness)”로 묘사한다. 그가 묵은 곳은 해충이 들끓는 건초 헛간이었지만, “빙하와 두견화 숲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그 불편을 보상해줬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2차대전 중 영국군에 포로로 잡힌 하러는 인도를 탈출해 1945년 키룽에서 약 9개월을 보냈다.
당시 하러가 살았던 키룽(Kyirong)은 엄밀히 말하면 중국 국경검문소인 지룽은 아니다. 이곳에서 약 20㎞ 떨어진 지룽진(吉隆镇)을 가리킨다. 지룽은 해발 약 1900m 협곡, 지룽진은 2700m 산 안부에 자리잡고 있다.
네팔과 티베트를 잇는 지룽 계곡은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티베트 송첸캄포(?~649) 왕이 네팔의 부리쿠티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때 ‘결혼길’이며, 8세기에는 인도의 고승 파드마삼바바가 이 길을 거쳐 티베트로 갔다고 전해진다. 티베트 불교의 거장 밀라레파(1052~1135 추정)도 지룽 인근 궁탕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지룽은 외국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티베트의 성산(聖山), 카일라스(6638m)로 가는 관문이면서 티베트 여행을 마치고 네팔로 들어오는 길목이다. 카일라스 단체여행상품을 파는 여행사도 하인리히 하러의 표현대로 “울창한 숲이 있는 계곡 마을”로 홍보한다.
그러나 지금 지룽은 폐허가 됐다. 6층 높이의 국경검문소 건물은 거의 무너지고 잿빛 토사로 뒤덮였다. 네팔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일대에서 수백명의 외국인이 실종됐으며, 관광가이드도 36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강을 따라 늘어선 마을은 처참하게 변했다. 대홍수의 발원지인 랑탕리룽(7234m) 아래부터 렌데콜라·보테코시·트리슐리 강 하류까지 수십㎞에 걸쳐 파괴됐다. 다시 하인리히 하러의 ‘행복의 마을’이 되려면 언제일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랑탕 트렉도 사실상 폐쇄된 상태다. 이곳은 에베레스트(8848m)와 안나푸르나(8091m) 보전지역 다음으로 네팔에서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다. 하지만 도로가 크게 훼손돼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근방 고사이쿤다, 타망 헤리티지 트레일, 헬람부 서킷, 루비밸리 트레킹 코스도 폐쇄됐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의 일출. 중앙DB
그밖에 주요 산악 지역의 트레킹 코스는 직접적인 홍수 피해를 비껴갔다. 몬순이 지나면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안나푸르나, 마나슬루(8163m), 칸첸중가(8586) 등은 다시 트레킹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네팔의 상업원정대(영리 목적의 등반 서비스)와 여행사 홈페이지에는 등반과 트레킹 상품을 안내 중이다. 특히 네팔 원정대운영자협회(EOAN)는 마나슬루에 등반루트(고정 로프) 전담팀을 투입했다. 이달 셋째 주에 정상까지 고정 로프 설치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네팔 여행경보 지역은 실제 홍수 피해보다 넓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라수와 지역이 속한 바그마티주를 비롯해 간다키주, 코시주, 룸비니주 등 4개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기존 1단계 ‘여행유의’에서 홍수 발생 이후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한 것이다. 홍수 피해가 집중된 랑탕은 물론 행정구역상 코시주에 속하는 에베레스트·칸첸중가, 간다키주에 속하는 안나푸르나·마나슬루도 해당된다. 불교 순례 성지 중 하나인 룸비니 등도 특별여행주의보 대상이 됐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네팔 여행 계획이 있는 사람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인의 네팔 방문 목적은 히말라야 트레킹이 많다. 당분간 히말라야 트레커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네팔 정부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피해 복구를 위해선 외화를 벌어들여야 하는데, 한국·일본·중동 등 외국으로 노동자를 보내거나 히말라야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법 말곤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네팔은 2015년 대지진으로 전국에서 약 9000명이 숨졌다. 해외 트레커의 발길도 끊겼다. 몇 달 후 네팔관광청은 “세계의 지붕으로 와주세요(Back on Top of the World)” 캠페인을 벌였다.
지난 2일 네팔 관광부 장관도 비슷한 호소를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을 통해 “네팔의 공항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네팔 방문은 참혹한 비극과 싸우고 있는 나라를 돕는 길”이라고 호소했다.
스와르님 와글레 네팔 재무장관은 이번 홍수 피해 복구에 40억~50억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네팔 GDP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