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혁신장관 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을 향해 투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미국 내 반도체 투자가 미진할 경우 고강도의 표적 관세를 예고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경고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을 다시 거론했다. 두 사안에 모두 관련된 한국의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다.
러트닉 장관은 2일(현지시간)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혁신장관 회의 도중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표적화되고(targeted) 신중한(thoughtful) 반도체 관세 정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여기(미국)서 생산하면 관세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생산하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대가(관세)를 치를 각오를 하라’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발언은 지난달 27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한 대규모 반도체 관세 관련 기사와 관련된 것이다. 기사에서 폴리티코는 미국 정부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업 투자와 연계한 고강도의 반도체 관세 부과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대상 제품 범위를 반도체뿐 아니라 노트북,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 서버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완제품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가별 관세율과 쿼터를 설정하고, 주요 반도체 제조사를 대상으로 국가별 지침을 적용하는 방식 등도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TSMC 창업자 장중머우가 지난 2022년 1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공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해당 보도에 대해 러트닉 장관은 “정확히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TSMC는 애리조나에 2650억 달러(약 360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마이크론은 2500억 달러(약 340조원) 규모의 메모리 공장을 짓는다. 이 두 회사만으로도 5000억 달러(약 680조원)가 넘는다”며“그것이 바로 트럼프 관세 정책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가 들어왔을 때(집권을 시작했을 때) 미국의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비중은 2%도 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40%를 향해 가고 있고, 인텔이 성공한다면 우리가 떠날 때는 50%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대만 정부가 다음 주에 미국에 추가적인 200억~300억 달러(약 27조~4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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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트닉 “삼성전자·SK하이닉스 美 불러오고 싶다”
지난해 2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모습. 사진 삼성전자
러트닉 장관은 이후 가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선 반도체 관세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내는 경고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회자가 “(반도체 관세는) SK나 삼성 입장에선 경고를 받은 것(on notice)처럼 여겨진다”고 묻자 “경고를 받은 것”이라고 확인하며 “그들은 이곳에 공장을 지을 것이고, 지을 필요가 있다(They need to build here). 그들이 이곳에 공장을 짓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두 기업은 이미 미국에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 달러(약 50조원) 이상을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40억 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두 기업에 추가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7월에도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수적인 부품의 글로벌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며 “(두 회사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팹 공사 현장에서 직원들이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러트닉 장관 발언과 관련해 청와대는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관련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우리 기업에 불리한 영향이 없도록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완화하지 않을 입장도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특정 몇 가지 칩을 판매하겠다고 제안하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중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달 말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에서 수출 통제 완화 문제는 논의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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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일 파이프라인 건설”…알래스카 프로젝트 또 압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을 향해 또다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투자를 압박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일본과 한국이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연료를 싣고, 석유를 싣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그 밖의 모든 일을 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알래스카를 지역구로 둔 댄 설리번 상원의원의 3선 도전을 돕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로 갈 것”이라고 밝히는 과정에서 나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지난 1월 20일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가동할 것”이라며 “한국·일본에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던 것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알래스카 노스슬로프 지역에서 추출한 LNG를 약 1300여㎞의 가스관으로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운반해 액화한 뒤 수요지로 공급하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한일 간의 무역 합의로 한국이 투자하기로 한 3500억 달러(약 480조원), 일본의 5500억 달러(약 750조원) 중 상당 부분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입될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막대한 건설 비용과 사업성 문제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미국 쪽의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직접 투자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