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보장하기 위해 영화관에서 화면해설과 자막, 수신 기기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이 판단과 관련해 장애인 등을 위해 쉽게 쓴 ‘이지리드’(Easy-Read) 판결문을 최초로 제공했다.
대법원이 영화관에서 시·청각 장애인에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해야한다고 판결한 3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차연) 관계자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판결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3일 시각·청각장애인 4명이 CJ CGV·롯데컬처웍스·메가박스 등 영화상영업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구제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장애인 4명 전부승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편의조치를 제공할 상영관의 범위와 상영 횟수에 제한을 둔 원심 판단이 영화관의 부담을 지나치게 고려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상영 횟수와 상영관의 범위라는 두 가지 기준을 중첩적으로 적용한 원심 판결은 상영업자들의 재정적 부담만을 과도하게 고려한 것으로서 그 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대해 “장애인 아닌 사람에게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의 변화로 인해 과도한 혼란을 초래하지 않으면서도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차별의 철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등도 함께 살펴보았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시청각장애인 4명은 2016년 2월 영화관에서 화면해설과 자막 등 장애인 편의조치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영화상영업자들에게 시청각장애인의 영화 관람권을 보장하기 위해 영화 상영 시 자막과 음성해설을 제공할 것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영화상영업자들이 편의조치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장애인을 간접차별하고 있다고 봤다. 영화 제작업자나 배급업자가 화면 해설과 자막 파일을 제공한 영화에 대해 화면 해설과 자막을 제공하고 FM 보청기기 등 보조기기도 마련하라고 판결했다. 또 웹사이트에 화면 해설과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와 상영관, 상영 시간 등을 안내하고 점자 자료나 큰 활자로 된 문서, 수어 통역 등을 제공하라고 했다.
항소심은 상영업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청구를 부분 인용했다. 복합상영관의 총 좌석수를 합해 300석이 넘는 경우 그 중 1개 이상의 상영관, 그리고 300석 이상 규모의 상영관을 적용 대상으로 제한했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 형태로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횟수도 총 상영 횟수 중 3%로 정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음성 화면해설과 자막 등 장애인에 대한 편의조치를 제공하는 영화를 뜻한다.
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 4명에게 일반 판결문과 함께 ‘이지리드’ 판결문을 제공했다. 이지리드 판결문이란 장애인·노인 등 일반적인 판결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쉽게 작성한 판결문이다.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문을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이날 선고하면서 청각장애인 및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도 지원했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나온 이번 대법원 판결은 장애인이 영화를 향유할 권리를 대법원이 최초로 판시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