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딩 에밀리 (Finding Emily) 동명이인 수백 명 뒤쫓다 교내 소동 논문 위해 접근한 심리학도 비밀 동행 낭만·집착 경계 넘나드는 청춘 로맨스
익숙한 장르의 즐거움 속에서 오늘의 연애가 품은 불편한 질문까지 놓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 [Focus Features]
사랑은 대개 정확한 주소를 모른 채 시작된다. ‘파인딩 에밀리’는 이 오래된 사실을 ‘한 자리 모자란 전화번호’라는 우연 속에 옮겨놓는다. 맨체스터의 한 대학 학생회관에서 음향 기사로 일하는 음악도 오웬(스파이크 펀)은 파티에서 에밀리(세이디 소버럴)를 만나 단숨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전화번호에는 숫자 하나가 빠져 있다. 다음 날부터 오웬은 불완전한 전화번호 하나를 단서 삼아 캠퍼스 곳곳에서 에밀리를 찾아 나선다.
영화는 전화번호의 작은 빈자리를 운명의 증거로 부풀리는 대신, 누군가를 찾고 싶은 마음이 언제 설렘을 지나 집착으로 기울어지는지 묻는다. 한때 로맨틱 코미디의 자연스러운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졌던 ‘상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는 이제 낭만이라는 이름만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런데 캠퍼스에는 에밀리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요정 분장을 한 에밀리부터 이름만 같을 뿐 성격은 제각각인 에밀리들이 잇달아 나타나면서 오웬의 수색은 소동극으로 번진다. 그가 붙인 전단과 대학의 모든 에밀리에게 뿌린 이메일은 사적인 그리움을 순식간에 공적인 사건으로 바꾼다. 수신인을 숨기지 않은 한 번의 실수로 ‘에밀리들’은 서로를 발견하고, 오웬은 애틋한 구애자와 불편한 스톡커 사이에서 온라인 화제의 인물이 된다.
이 대목의 묘미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이 더는 두 사람만의 감정으로 머물 수 없다는 데 있다. 진심은 화면에 공개되는 순간 앞뒤 사정을 잃고, 사람들은 이를 낭만적인 구애 또는 불편한 침해로 재빨리 규정한다. 영화는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주지 않은 채, 호감과 상대의 의사 사이에 놓인 미묘한 간극을 경쾌한 웃음으로 풀어낸다.
그때 또 다른 에밀리, 심리학과 학생 에밀리 레인(앵거리 라이스)이 등장한다. 사랑을 자기 파괴를 부르는 진화의 잔재로 보는 냉소주의자인 그녀는 오웬의 우스꽝스러운 수색을 졸업 논문의 사례로 삼으면서도 연구 목적을 숨긴 채 곁을 지킨다. 오웬이 ‘에밀리’라는 이름에 자신의 환상을 투사한다면, 에밀리는 눈앞의 한 사람을 미리 세운 가설에 끼워 맞춘다. 한쪽은 감정을 맹신하고 다른 한쪽은 분석을 맹신하지만, 상대를 자신의 욕망이나 논리를 입증할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사랑을 믿는 오웬과 사랑을 분석하려는 에밀리는 자신의 확신 때문에 눈앞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 [Focus Features]
제목의 ‘찾기(finding)’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른 의미로 옮겨간다. 오웬이 찾아야 할 사람은 전화번호를 잘못 남긴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환상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한 눈앞의 사람이다. 에밀리 역시 사랑이 해롭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아니라, 어떤 논리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을 마주해야 한다. ‘에밀리 찾기’는 그렇게 타인을 제대로 알아가는 일, 더 나아가 자기 안의 맹점을 발견하는 일로 방향을 바꾼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에밀리의 생각보다 폭이 넓다. 사랑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그녀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위험을 감수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거짓과 오해가 드러나는 후반부도 이별과 화해라는 장르의 흐름을 따르지만, 진심만으로 잘못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알리시아 맥도널드는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한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한편, 그 문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캠퍼스 곳곳의 에밀리들이 차례로 등장해 소동을 키우는 전개는 스크루볼 코미디의 빠른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은 때때로 자신이 로맨틱 코미디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 장르의 클리셰를 먼저 눈치채고 되받아친다.
맥도널드의 연출은 런던의 반듯한 풍경 대신 맨체스터의 투박한 일상을 무대로 삼는다. 학생회관과 강의실, 펍과 거리는 사랑을 눈부신 사건이 아니라 시끌벅적한 생활 속에서 가까스로 포착되는 감정으로 만든다. 뉴 오더의 ‘Blue Monday’로 문을 여는 음악의 선택도 단순한 장식에 머물지 않는다. 쓸쓸함과 흥겨움이 한 곡 안에 공존하듯 영화는 인물들의 민망함을 감추지 않은 채 그 위에 기쁨을 쌓아 간다.
오웬의 에밀리 찾기는 사적인 구애에서 캠퍼스 전체를 뒤흔드는 소동으로 번진다. [Focus Features]
오웬이 음악을 만드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끝내 노래로 건네게 하는 밑바탕이 된다. 이른바 ‘남자 주인공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여자친구’라는 인물 유형을 등장인물의 입으로 직접 언급하는 장면은 영화가 장르를 다루는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유형에 깃든 남성 중심적 표현이 솔직하다. 각본을 쓴 레이철 하이런스는 사랑의 운명을 믿는 인물과 이를 비웃는 인물을 나란히 세우고, 두 사람의 시선 차이에서 웃음과 긴장을 끌어낸다.
무엇보다 영화는 로맨스 자체보다 로맨스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한다. 에밀리는 사랑을 관찰할 수 있는 행동 양식으로 분석하려 하고, 오웬은 계산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뛰어든다. 논문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를 관찰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관찰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 휘말리는 과정이 이 영화의 진짜 묘미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솔직해지는 순간은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의 절정처럼 보이지만, 그 앞까지 이어진 냉소와 진심의 줄다리기가 장면에 감정의 무게를 더한다.
캠퍼스라는 배경도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졸업과 진로를 앞둔 청춘의 불안, 관계에 서툰 세대의 자의식이 로맨스 아래 옅게 깔려 있다. 그래서 ‘파인딩 에밀리’는 한편으로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확신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성장담이 된다. 이름 하나를 둘러싼 해프닝은 결국 운명의 상대를 찾아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되묻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파인딩 에밀리’는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버리지 않는 대신, 오늘날의 구애가 상대의 의사와 사생활, 온라인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다소 손쉽게 갈등을 푸는 순간에도 두 배우의 생기와 맨체스터의 활기찬 풍경, 지역 음악 문화를 아우르는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온기를 지켜낸다. 익숙한 장르의 즐거움 속에서 오늘의 연애가 품은 불편한 질문까지 놓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