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약 60만명을 보유한 한 주식 유튜버가 최근 라이브 방송에서 이른바 ‘동전주(주당 1000원 미만 주식)’를 소개하며 던진 말이다. 종목을 하나씩 화면에 띄운 그는 “쌍바닥(W자형 두 차례 저점)을 찍고 올라가는 종목이 많다”, “에너지가 강하다. 박스권을 돌파했다”며 매수·매도 시점까지 콕 짚었다.
무료 방송은 유료 상품 판매로 이어졌다. VIP 회원권은 월 12만원, 종목 검색 프로그램은 165만원이었다. 검색기와 투자기법 강의, VIP 리딩 등을 묶은 프리미엄 상품은 연 1300만원에 달한다. 그는 공개된 프로필에서 자신을 베테랑 주식 전문가로 소개했지만, 금융회사 근무 경력이나 금융 관련 자격은 별도로 기재돼 있지 않다.
금융·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핀플루언서(Finfluencerㆍ금융+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불법 투자자문이나 투자 사기로 번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소셜미디어(SNS)가 개인투자자가 손쉽게 주식 정보를 얻는 창구가 됐지만, 정보 제공자의 전문성을 검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진 기자
3일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이 지난 4월 13일부터 8월 21일까지 주식·경제 분야 핀플루언서 채널 369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151개에서 위법 정황이 확인됐다. 10곳 중 4곳꼴이다. 금감원은 지난 4월부터 인공지능(AI) 기반 감시체계를 도입해 관련 채널을 들여다보고 있다. 위법 정황이 포착된 영상은 5511건에 달했다. 금감원은 이 중 33개 채널을 수사 의뢰하고 영상 47건에 대해 차단을 요청했다. 돈을 받고 여러 사람에게 종목이나 매매 시점 등을 조언하려면 유사투자자문업 신고를, 개인별 상담이나 쌍방향 투자 정보를 제공하려면 투자자문업 등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채널은 신고나 등록 없이 투자자문을 해주는 통로가 됐다.
사칭, 도용, 불법 리딩방 운영 등 위법 행위도 뒤따랐다. 유명 핀플루언서의 프로필·로고를 베낀 가짜 채널에 기존 영상을 짜깁기해 올린 뒤 불법 리딩방으로 유인하거나, 실제 운영자인 것처럼 댓글을 달아 앱·사이트로 끌어들였다. 금융회사 이름과 로고를 도용해 투자금을 받은 뒤 잠적하거나, 구독자가 많은 주식과 무관한 채널을 사들여 주식 채널로 바꾼 뒤 ‘무료 종목 추천’을 미끼로 불법 리딩방 가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관련 민원은 지난해 130건, 올해 상반기 64건 등 194건에 이른다. 일부 유튜버는 유사투자자문업 신고 없이 월 2990원~60만원을 받고 종목과 매매 시점을 조언했다. 투자일임업 등록 없이 자동 주식매매 프로그램을 판매한 사례도 있었다. 다만 금감원이 핀플루언서 민원을 별도 관리하지 않아 ‘인플루언서 추천’, ‘유튜버 추천’ 등 관련 키워드로 추출한 수치다.
한 유료회원 A씨는 “처음에는 추천 종목에 투자해 꽤 수익을 냈다”며 “고급 정보는 VIP 정회원 방에서만 공개한다고 해 200만원을 냈지만, 이후 산 종목이 고점에 물렸다.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경진 기자
해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금융 조언을 제공하는 212개 계정의 콘텐트 약 50시간 분량을 분석한 결과, 운영자의 과반은 금융자문 관련 면허나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약 3분의 1은 개별 종목을 추천하거나 자신의 보유 종목을 언급했다.
전문성 대신 친밀감이나 ‘성공한 삶’을 내세우는 전략을 쓰기도 했다. 한 21세 영국 핀플루언서는 “후드티와 모자를 쓴 또래가 투자 이야기를 하면 큰 사무실에서 정장을 입은 사람보다 훨씬 공감하기 쉽다”고 WSJ에 말했다. 또 다른 29세 핀플루언서는 10만 달러가 넘는 벤츠를 틱톡에 반복해서 공개했다. 그는 이를 “마케팅 전략”이라며 “내가 한 일을 따라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KB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2월 보고서에서 국내 핀플루언서에는 금융투자업자와 달리 별도의 자격 요건이나 윤리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미등록 투자자문이나 부정거래 등을 처벌할 수 있지만 사후 제재에 치우친다는 한계도 있다. 연구소는 “일정 규모 이상 유료 회원을 보유하거나 지속적으로 투자 조언을 하는 핀플루언서에 등록·신고·공시 의무를 부과하고, 광고 대가나 보유 종목 등 이해상충 공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성훈 의원은 “검증되지 않은 핀플루언서의 무분별한 난립은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개미 투자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주범”이라며 “불법 행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 방안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