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찰이었다.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었지만 사건에 잘못 휘말리면 한순간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공포가 휩싸였다.
이때부터 나는 소위 ‘공포의 퇴직 준비’에 돌입했다. 출근 전, 퇴근 이후의 여유 시간은 모조리 자기계발에 쏟아부었다.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시작으로 제과·제빵 기능사, 사회복지사, 리더십 스피치 강사에 이어 노래 강사 자격증까지 땄다.
이뿐이 아니다. 새벽부터 떡집에 가서 떡 기술을, 유명 두부집을 찾아가 손두부 만드는 법을 배웠다.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따려고 주말마다 서울 신림동 학원에 새벽 기차를 타고 다녔다.
내 벌이는 생활비를 제외하고 온통 ‘퇴직 후’ 공포 퇴치에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신다”고 추어올리지만, 난 늘상 “절대 나처럼 살지 마라”고 외친다.
" 돈·시간·노력을 어마어마하게 썼어요. 그런데 반전이 뭔지 아세요? 이렇게 고생해 배운 게 퇴직 후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더라 이겁니다. "
퇴직 준비를 위해 제과·제빵 기능사를 취득한 정기룡씨가 자신이 직접 만든 빵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2012년, 55세에 계급 정년(총경으로 11년 근무한 뒤 승진 못 하면 퇴직하는 제도)으로 경찰복을 벗은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공포에 휩싸여 퇴직 후를 준비하던 당시의 정기룡(69)은 몰랐던 진짜 ‘은퇴 기술’이 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토록 가열차게 땄던 자격증들도 이제 옥석이 가려진다. ‘은퇴 공포’를 몰아낼 수 있었던 진짜 특별한 경험담까지 들려드리겠다.
빵·떡·두부… 다 배워보고 깨달은 자영업의 진실
" 서장님, 대전에 경찰서·파출소가 얼마나 많아요. 경찰 관련 행사는 또 좀 많습니까? 서장님이 빵집이나 떡집 중에 아무거나 하나 하시면 후배들이 행사 때마다 거기서 대다 먹을 거 아녜요. 매상이야 보장된 거죠. 아무 걱정 마세요. "
내가 퇴직 후 삶을 걱정할 때면, 후배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을 때마다 나 역시 경찰 경력과 인맥이 퇴직 후에도 의지할 가장 튼튼한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그땐 몰랐다. 나의 퇴직 준비를 대혼돈에 빠뜨린 최악의 착각이 바로 이 헛된 믿음이었단 사실을 말이다. 퇴직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직장에서 맺은 인연은 직장을 나오면서 사라진다.
빵·떡·두부처럼 제조와 판매를 함께하는 자영업은 고난도·고강도 노동이다. 직장에 다니며 기술만 익히면 퇴직 후 가게를 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개인 빵집은 프랜차이즈에 밀리고 국산콩 두부는 단가가 맞지 않았다.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따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착각이었다. 강의·연구 경력 없는 50대 은퇴자가 젊은 연구자들과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좋아하는 노래를 살려 강사 과정도 이수했지만, 무거운 음향 장비를 직접 싣고 설치해야 한다는 현실에 접었다.
마지막으로 공인노무사에 도전했으나 응시 조건인 토익 700점이 벽이었다. 첫 성적 230점에서 일대일 과외로 635점까지 올렸지만, 퇴근 후 매일 공부하는 강행군에 몸이 버티지 못했다. 아내의 “그러다 죽겠다”는 만류에 결국 이마저 포기했다.
지금도 우리 집엔 수많은 수험서, 빵 굽는 오븐, 두부 가마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 퇴직 준비에 쏟은 학비며 책값, 시간, 노력을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만 나온다.
정기룡 전 경찰서장이 김창옥 강사와의 인연으로 콘서트형 강연 프로그램인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강연하고 있다. 인터넷 캡처
그 많은 기술을 배우고 학위와 자격증을 땄지만, 퇴직 후 밥벌이가 된 건 딱 하나였다. 스피치다. 경찰서장 시절 직원 300~400명 앞에만 서면 심장이 쿵쾅거려 2년간 스피치를 배웠다. 전환점은 김창옥 강사와의 만남이었다. 이야기를 한 번 뒤집고 또 뒤집는 ‘반전의 기술’을 익히자 말맛이 살아났고, 떨림도 사라졌다.
퇴직 후엔 전국을 돌며 회당 70만~100만원, 월 1000만원 넘게 벌었다. 하지만 65세가 되자 강연 요청이 뚝 끊겼다. 직무 교육은 노인 대상 강연으로 바뀌었고, 수입도 월 300만원으로 줄었다. 강연 시장에도 나이의 벽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