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별은 도시의 불빛을 벗어나야 제 모습을 드러내듯, 인생에도 비워진 자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나고 나면, 부부에게도 서로를 다시 바라볼 시간이 찾아온다.
독립기념일 연휴,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몇몇 지인 부부가 별을 보러 가자며 캠핑을 제안했다. 얼떨결에 함께하기로 했지만, 아이들 없이 어른끼리 떠나는 캠핑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연휴만 되면 으레 차에 짐을 가득 싣고 길을 나섰다. 물놀이를 좋아하던 애들을 위해 바닷가나 계곡을 끼고 있는 캠핑장을 찾아 떠나곤 했다. 도심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며 또 다른 배움을 얻었다. 야외에서 즐기던 바비큐와 모닥불에 구워 먹던 고구마와 옥수수, 노릇하게 익어가던 마시멜로는 지금도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은 우리 삶의 모습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미성년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아이들은 해방이라도 된 듯 부모의 품보다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을 더 즐기는 나이가 되었다. 나 역시 그 시절을 지나왔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곁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허전함이 남았다. 이제는 편안한 숙소에 머무는 여행에 더 익숙해졌지만, 돌이켜보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은, 텐트 안에서 추위와 더위를 함께 견디며 서로의 온기로 밤을 지새우던 시간, 함께였기에 불편함마저 추억이 되었던 시간이다.
텐트와 침낭 등 오래 묵은 캠핑 장비를 하나씩 꺼내 챙긴다. 뽀얗게 가라앉은 먼지를 털어내자, 그 안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던 기억들도 함께 깨어난다. 필요한 물품을 수첩에 하나씩 적어 내려가며 빠진 것은 없는지 살피고 짐을 꾸리다 보니, 오래전 아이들과 떠났던 여행의 설렘이 다시 가슴을 두드린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했던 날들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픈 추억이 되리라는 것을.
목적지는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이다. 물이 귀한 사막이라며 남편은 세숫물까지 커다란 드럼통 두 개에 가득 채운다. 조슈아 트리의 한낮은 뜨겁고 메말라 있었다. 오랜 시간 거친 바람과 풍파에 깎인 화강암 바위들은, 거대한 조각가의 손길을 거친 듯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 곳곳에는 선인장과 조슈아 나무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성경 속 여호수아에서 유래했다는 조슈아 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가 마치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의 두 팔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거친 바람과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나무들은 사막이 품은 강인한 생명의 증거였다. 오래 견딘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일이다. 조슈아 나무는 이민 생활 속에서도 삶의 자리를 지켜 온 우리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해가 지자 사막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고 장엄한 밤하늘이 열린다.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는 숨어 있던 별들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하늘은 수많은 빛으로 짜인 거대한 우주였고, 우리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 그 압도적인 고요 앞에서는 흘러가는 시간도, 세상 걱정도 잠시 멈춘 듯하다.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고 나면 중년에게도 둘만의 온전한 시간을 다시 채워 갈 계절이 찾아온다. 일행 부부들이 서로를 살피며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은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이었다. 젊은 날에는 자녀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서로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같은 방향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 것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사막의 별이 밤하늘을 가득 메운다. 지나온 시간만큼 깊어진 우리는 이제 서로의 곁에서 남은 계절을 천천히 함께 채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