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봄, 비가 갠 교회 마당에 허름한 외투를 걸친 여든 살 노인 한 분이 조심스레 들어오셨다. 첫눈에 보아도 삶의 무게가 깊게 새겨진 분이었다.
김 선생님. 그분은 갈 곳이 없어 아들 집에 얹혀 지낸다고 했다. 중국인인 며느리는 밤낮으로 카지노에서 일했고,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 예민해져 있어, 혹시나 잠을 깰까 봐 선생님은 집안에서 발끝으로만 걸어 다니며 숨을 죽이고 지낸다고 했다.
미국에 오신 지 40년이 넘었다는 그는 무역업을 하며 한국과 미국을 바쁘게 오갔지만, 정작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세금보고를 하지 못한 채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 결과 SSA(사회보장연금)도, SSI(웰페어)도, 시니어 건강보험인 메디케어도, 심지어 저소득층에게 주어지는 메디칼 혜택조차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아들에게 용돈을 받는 것이 미안해 빈병을 모아 팔아보기도 했지만, 온종일 쓰레기통을 뒤져도 점심 한 끼 사 먹을 돈도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셨다.
아파도 보험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밤새 끙끙거리며 혼자 견뎌야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김 선생님은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을 2마일씩 걸어 매주 교회에 오셨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교회에 나오시며 신앙도 깊어지고, 얼굴빛도 조금씩 밝아졌다.
나는 그분을 모시고 사회보장국 오피스를 찾아가 메디칼을 신청해 드렸다. 이어 웰페어도 신청해 월 980달러의 현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마지막으로 메디케어 신청을 위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우산을 함께 쓰고 사회보장국과 카운티 오피스를 찾아다녔다. 마침 2025년부터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영주권 취득 5년 이상 이거나 시민권자는 Medicare Part A buy-in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김 선생님도 마침내 메디케어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후, 김 선생님은 메디케어 카드를 손에 들고 사무실을 찾아오셨다.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시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연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로 소식이 끊겼다. 한 달쯤 지났을까. 또 다른 노인 한 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조심스레 김 선생님의 부고를 전해주었다.
메디케어 카드를 받고 처음으로 의사를 찾아 진료를 받은 날, 우리 사무실에 들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그 길에서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고, 며칠 후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참, 인생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웰페어도 받고, 메디케어도 받고, 이제는 독립하겠다며 그렇게 기뻐하시던 분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그토록 기다리던 평안의 문턱에서, 그분의 삶은 허무하게도 막을 내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분의 마지막 걸음은 허무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깊은 평안으로 이어진 길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그분을 교회로 인도하셨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어 마침내 천국으로 부르셨다. 그 봄날, 김 선생님은 이 땅의 고단함을 벗고 하늘의 쉼으로 걸어 들어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