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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로 세상 읽기] 재앙은 아름다운 얼굴로 온다

Los Angeles

2026.09.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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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이상명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1859년 9월의 어느 날, 밤하늘이 핏빛과 초록빛 오로라로 물들었다. 사람들은 환호하며 거리로 나왔지만, 그 아름다움은 재앙의 서곡이었다. ‘캐링턴 이벤트(Carrington Event)’로 불리는 초강력 태양풍이 북미와 유럽의 전신선을 태우고 기사들을 감전시켰다. 산업시설이 걸음마 단계였던 그때와 달리, 만약 지금 당시와 같은 규모로 강타당한다면 전력망과 위성, 병원과 은행이 한순간에 멎을 것이다. 가장 눈 부신 빛이 가장 어두운 무너짐을 예고했으니, 아름다움과 재앙은 한 몸이었다.
 
견고하게 설계된 것일수록 우리는 그것의 붕괴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1988년 로버트 모리스의 웜 하나가 유닉스(Unix)의 틈을 타고 퍼져 인터넷의 상당 부분을 마비시켰다. 순수한 실험이 재앙이 된 이 사건은 오늘날 자가복제형 악성코드와 랜섬웨어 공격의 원형이 되었다. 인터넷 자체가 취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파고드는 상시 전장이 되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은 이 전장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방어자가 이상 징후를 탐지하는 순간, 공격자는 같은 인공지능으로 더 교묘한 무기를 만들어낸다. 우리를 지키라고 만든 지능이 도리어 우리를 겨누는 창이 되는 역설이 오늘의 현실이다. 생명유지 장치가 멎고 신호등이 꺼지는 일은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다.
 
2024년 7월 19일, 온라인 보안업체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업데이트 파일 하나가 전 세계 850만 대의 윈도우 컴퓨터를 멈춰 세웠다. 공격이 아니라 사소한 결함이었다. 수천 편의 항공기가 발이 묶이고 응급실은 종이 차트로, 은행 창구는 먹통이 되었다. 손실만 수십억 달러. 누구의 악의적 의도나 배후도 없었지만 오류 하나가 문명의 신경망을 통째로 마비시켰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것은 전기 신호와 데이터 패킷 위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믿음의 구조물이라는 것을.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평신도 신학자였던 자크 엘륄은 일찍이 경고했다. 기술은 처음엔 도구이나, 어느 순간 자율적 체계가 되어 인간을 종속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이 기술을 다스린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실은 기술이 인간의 판단 기준을 재편하는 것은 아닌가. 다스린다고 믿는 자가 실은 다스려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반전이다.
 
이 경고는 종말론적 공포를 부추기려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서 종말론이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다루는 가르침이다. 성서적 종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고, 문명의 붕괴는 인간 책임의 영역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은 흩어진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은혜의 통로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의 비유를 이렇게 맺으신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7).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안에 갇힌다.
 
캐링턴이 남긴 오로라처럼, 재앙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먼저 찾아온다. 문명과 야만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본디 한 몸에서 났다. 우리는 그 얼굴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밤하늘이 다시 붉게 물드는 날, 그 빛을 경이로 바라볼 것인가, 경고로 읽어낼 것인가. 그때 우리가 붙들 반석은 막연한 안전의 약속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이웃을 돌보고 공동체를 지키도록 몸에 새겨진 순종이어야 한다.

이상명 / 캘리포니아 프레스티지 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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