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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 306위 우즈 아들에게 테일러메이드가 준 돈 40억

중앙일보

2026.09.04 19:02 2026.09.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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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PNC 챔피언십에 참가한 타이거 우즈 부자. AP=연합뉴스

2024년 PNC 챔피언십에 참가한 타이거 우즈 부자. AP=연합뉴스

골프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골프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재벌 회장이 치든 무명의 아마추어가 치든 공은 같은 물리 법칙을 따라 날아간다. 같은 규칙으로 점수를 계산하고, 심판이나 감독이 결과에 개입할 여지도 거의 없다. 그게 멋졌다.

사회의 다른 영역이 연줄과 배경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골프 코스 위만큼은 공정함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내 편이 하면 소신이고 상대편이 하면 잘못이라는 이중잣대가 세상을 갈라놓는 요즘, 골프의 이 공정함은 더욱 소중하다.

테일러메이드가 타이거 우즈의 아들 찰리 우즈와 NIL(Name, Image and Likeness) 계약을 맺었다. 미국의 아마추어와 대학 선수들이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 초상권을 활용해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테일러메이드는 지난해 2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 카이 트럼프와도 같은 형태의 계약을 맺었다.

돈이 없어 운동을 포기하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런데 억만장자 집안의 자녀에게 또다시 거액이 몰린다는 사실은 선뜻 반갑지 않다.

업계에서는 찰리 우즈의 NIL 시장 가치를 연간 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0억원으로 추산한다. 카이 트럼프는 200만 달러, 약 27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미국 주니어 골프 최고의 유망주보다 서너 배나 많은 돈이 두 10대에게 이름값만으로 따라붙는 셈이다.

지난해 11월 LPGA 투어 더 안니카 대회 1라운드 카이 트럼프 조의 스코어. 이매진 이미지

지난해 11월 LPGA 투어 더 안니카 대회 1라운드 카이 트럼프 조의 스코어. 이매진 이미지

실력이 그만큼이라면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찰리 우즈의 세계아마추어골프랭킹(WAGR)은 1300위권이다. 미국주니어골프협회(AJGA) 랭킹은 306위, 미국 선수들끼리만 따져도 108위다. 지난해 AJGA 대회에서 한 차례 우승했지만, 올해 3월 열린 세이지밸리 주니어 인비테이셔널에서는 우승자에게 무려 31타 뒤진 최하위에 머물렀다.

카이 트럼프도 지난해 10월 기준 AJGA 랭킹 461위였다.

골프위크의 데이비드 두섹 기자는 “남자 선수 가운데 브랜드와 금전 계약을 맺는 선수는 25~30명 정도뿐”이라며 “성이 우즈가 아니었다면 이런 NIL 계약을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NIL은 기업과 선수가 자유롭게 맺는 계약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실력만 보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관심은 랭킹 1위 유망주보다 ‘우즈의 아들’과 ‘트럼프의 손녀’에게 훨씬 크게 쏠린다.

카이 트럼프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310만 명에 달한다. 찰리 우즈가 샷을 하는 장면이나 모자를 쓴 사진 하나가 주니어 세계랭킹 1위 선수의 경기 영상보다 수백 배 많은 조회 수를 올릴 수도 있다. 타이거 우즈 은퇴 이후를 대비해 ‘우즈’라는 브랜드를 미리 확보하는 수십 년짜리 보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으로서는 영리한 판단일지 모른다.

지난 6월 NBA 결승전을 관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손녀 카이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월 NBA 결승전을 관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손녀 카이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계산이 반복되면 골프가 오랫동안 지켜온 공정함의 가치도 조금씩 흔들린다. 골프용품 회사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벌써 “테일러메이드는 이제 골프용품 회사가 아니라 유명인 자녀 에이전시가 됐다”는 조롱까지 나온다.

특히 아쉬운 건 타이거 우즈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던 그다. 그런 그가 아들에게는 자신의 이름 덕분에 누구도 쉽게 받을 수 없는 거액의 후원을 안겨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형편이 어려운 유망주들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이 아닐 때가 많다. ‘내가 못 치면 부모가 훈련비로 쓴 큰돈이 모두 허사가 된다’는 부담이다. 그 압박 때문에 근육이 굳고 손이 떨린다. 짧은 퍼트 앞에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뛰어난 활약을 펼치다가 입스에 빠져 사라지는 선수들 가운데는 이런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히로 월드챔피언십 경기장에 나온 타이거 우즈 부자. AF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히로 월드챔피언십 경기장에 나온 타이거 우즈 부자. AFP=연합뉴스

찰리 우즈는 다른 종류의 부담을 짊어졌다.

아직 최고 수준의 실력을 증명하기도 전에 거액의 계약과 엄청난 관심이 먼저 따라붙었다. 이제 그는 ‘우즈의 아들’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결과를 내야 한다. 동시에 ‘실력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은 선수’라는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번 계약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아이들일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기회를 눈앞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찰리 우즈 역시 예외라고 할 수는 없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면 여전히 골프공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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