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woke, 진보적 가치를 강요한다는 비판적 표현) 척결을 앞세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의 문화전쟁이 이념 논쟁을 넘어 미군의 전쟁 수행 능력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이 펜타곤 안팎에서 거세다. 헤그세스 장관 취임 뒤 장성들이 대거 밀려났고, 군 수뇌부가 이란전쟁 장기화에 우려를 표시한 작전문서는 내부망에서 사라졌다. 전쟁이 7개월 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헤그세스 장관의 장악력이 커질수록 전력 현대화와 작전 판단에 구멍이 생기고 있다는 게 외신의 지적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펜타곤에서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E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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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데…육군장관과 참모총장, 초유의 동시 공백
내부 갈등은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의 사임으로 표면화됐다.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드리스콜 장관은 지난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히며 헤그세스 장관의 잇단 인사 조치가 육군 혁신과 전투준비태세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 11월 중간선거까지 남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드리스콜 장관은 결국 사임서를 제출했다.
미 육군장관은 예산·인사·무기 도입 등 육군 운영을 총괄하는 민간인 책임자이고 육군참모총장은 병력 훈련과 전투준비태세를 맡는 최고위 군인이다. 앞서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 4월 2일 임기가 2027년까지였던 랜디 조지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을 사실상 경질했다. 여기에 댄 드리스콜 미 육군장관까지 사임하면서 이란전쟁 와중에 육군의 조직 운영과 전력 건설을 이끌 수장 두 자리가 모두 비게 됐다.
댄 드리스콜 미국 육군장관이 지난 5월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육군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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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현대화 주도 지휘관도 밀려나…미래전 대비 차질
미 매체들은 수뇌부의 잇따른 퇴진을 헤그세스 장관의 숙청 작업 결과물로 보고 있다. CNN은 조지 전 총장과 크리스토퍼 도너휴 전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사령관 등 전력 현대화를 주도하던 지휘관들이 밀려나면서 드론전 등 미래전에 대비한 육군 혁신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지 전 총장의 후임인 크리스토퍼 러네브 직무대행은 최근 자체 드론을 제작하고 우크라이나식 전술을 훈련해온 유럽 주둔 제173공수여단에 드론 특화 임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미 육군은 실험 부대가 예정된 훈련을 마치고 본래 임무로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 의회에선 공화당의 톰 틸리스 상원의원, 민주당의 진 샤힌 상원의원 등 초당파 의원을 중심으로 관련 결정의 근거와 헤그세스 장관의 관여 여부를 밝히라는 반발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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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 경고한 문서…보도 나오자 내부망에서 사라졌다
정보 통제 논란은 이란전쟁 장기화에 대한 군 수뇌부의 경고가 외부에 알려진 뒤 불거졌다. WP는 지난달 30일 미 유럽·태평양·남부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이 ‘국방장관 지시록(SDOB)’을 통해 이란전쟁에 병력과 장비를 계속 투입하는 데 반대 의견을 냈다고 보도했다.
SDOB는 세계 각지에 배치된 미 병력과 장비 현황, 국방장관 지시에 대한 각 군과 사령부의 의견을 담는 기밀문서다. 지휘관들이 예상되는 위험을 공식적으로 남기는 내부 견제 통로로도 여겨진다. 이란전쟁 지원이 길어지면 유럽과 태평양 등 다른 지역의 대응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게 당시 군 수뇌부의 경고였다.
WP는 “해당 보도 뒤 수십 년치 SDOB가 미군 기밀 내부망에서 내려갔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작전 보안을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지만 WP는 정보 접근이 어려워지면 사령부 간 병력·장비 이동과 긴급한 작전 판단이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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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감춘 ‘친헤그세스 여론 부대’…공화당서도 장관 교체론
국방부가 일종의 친헤그세스 여론 부대를 불투명하게 운용했다는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WP에 따르면 보수 성향 군사 인플루언서 3명은 채용 사실과 구체적인 업무를 공개하지 않은 채 국방부 민간 직원으로 활동했다. 일부는 육군전쟁대학의 교육과정에 워크 이념이 포함됐는지를 조사하면서도 외부에서는 독립 논객처럼 헤그세스 장관을 옹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31일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방부는 개혁에 따르는 진통 수준으로 최근 논란을 일축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가 혼란에 빠졌다는 전제는 근거가 없다”며 “이것이 개혁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화당에서조차 헤그세스 장관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등 논란은 더 확산하는 양상이다. 헤그세스 장관의 인준에 찬성했던 톰 틸리스 미 상원의원은 “미군 장병들이 이토록 무능하게 관리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새 국방장관을 지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