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만나 3시간 넘게 우크라이나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이 종전 협상에 다시 시동을 걸고 러시아의 우방국들까지 전쟁 중단을 촉구하면서, 교착 상태였던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가운데),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회담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이날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공개된 크렘린궁 회담 영상에서 푸틴은 윗코프·쿠슈너와 악수한 뒤 빨간색 파일을 앞에 두고 미국 대표단과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모스크바 방문은 지난 1월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러시아 측은 미국 대표단을 우호적으로 맞았다. 윗코프와 쿠슈너는 푸틴과의 회담에 앞서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와 오찬을 했다. 푸틴도 양국 간 접촉이 “항상 유익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뤄야 할 상황은 쉽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위트코프 미 대통령 특사를 만나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회담 후 양측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미국 측이 종전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며 회담이 “매우 유익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회담이 “실질적이었다”며 향후 몇 주 안에 다음 단계가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에서는 돌파구가 없었다. 러시아는 자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전체를 넘기고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푸틴이 러시아군이 전장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거두고 있다고 이날도 강조하면서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사실상 항복 요구로 보고 거부한다.
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왼쪽)와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운데),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대통령 특사가 식당을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도 당장 종전 가능성에는 선을 긋는다. 존 소워스 전 영국 해외정보국(MI6)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양측 피해가 계속 누적되고 러시아군의 진격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2027년 중 휴전 협상이 가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푸틴 집권 중 “지속 가능한 평화”는 어렵다고 봤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지금은 (종전) 입구에도 아직 못 들어갔다. 그냥 입구를 또 한 번 만들기 위한 초입 단계”라며 “러시아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계산이 바뀌어야 실질적으로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일(현지시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및 초청 국제기구 대표단 공식 환영행사에 (왼쪽부터)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다만 이전과 다른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러시아와 가까운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종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등 러시아와 가까운 국가 정상들이 이례적으로 종전을 촉구했다. 푸틴이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국 특사들과 직접 대면 협상에 나선 점도 달라진 대목이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내부 부담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이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 연료 부족과 가격 상승이 나타났다. 차 위원은 “러시아의 영향력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며 전쟁에 장기간 발이 묶여 중동 등 다른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도 한계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오는 18~20일 국가두마(하원) 선거를 앞두고 전쟁 피로도도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 독립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2%가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을 시작하는 데 찬성했다.
(왼쪽부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그렇다고 푸틴이 당장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돈바스에서 추가 공세에 나서 협상력을 높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말 러시아가 국가두마 선거 이후 추가 동원령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푸틴에게 군사적 카드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차 위원은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에서 방어전에 참여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 영토인 돈바스 전선에 투입될 경우, 북한은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직접 가담한 교전국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만큼 평양이 러시아에 더 큰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종전 협상의 다음 시험대는 6일 키이우로 옮겨갔다. 윗코프와 쿠슈너는 이날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와 종전 논의를 이어갔다. 그간 두 사람은 모스크바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키이우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젤렌스키는 회담에 앞서 “우리의 제안은 준비돼 있다”며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키이우에는 영국·프랑스·독일 국가안보보좌관들도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미 특사들의 연쇄 방문에 맞춰 사흘간 모스크바와 키이우를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했지만 수도 밖에서는 공습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