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Eli Broad)는 유난히 미술품 수집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들이는 거부들과 달리 진심으로 미술과 사랑에 빠져 작품을 원했다. 그의 곁에서 26년간 미술품 수집을 도왔던 조앤 헤일러는 “브로드는 좋아하는 미술품을 발견하면 ‘어서 사자’고 끊임없이 재촉 전화를 했다”고 회상한다. 꼭 짝사랑에 빠진 틴에이저 같았다는 것. 특별히 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브로드는 40여년간 현대미술품 2000여점을 수집했고 2015년 헤일러를 초대 관장으로 뮤지엄 ‘더 브로드(The Broad)’를 LA 다운타운에 건립했다.
브로드가 개관 인터뷰에서 “참 행복하다”고 소년처럼 고백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세계 200대 부자에 속했던 그는 “자기 이름 내세워 뮤지엄 지으면 말이 많아요. 절세가 목적이다영향력을 키우려 한다며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측도 많지만 상관없다”며 기쁨이 넘쳐 보였다. “자식처럼 사랑하는 작품 자랑하는데 행복하지 않겠어요?”
오는 9월20일 개관 11주년을 맞는 브로드 뮤지엄은 LA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전시관에 장 미셀 바스키아,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쿠사마 야요이 등 유명 작가 작품이 차고 넘칠 뿐 아니라 미니멀리즘의 표상인 유니크한 건축물도 인기에 한몫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브로드 뮤지엄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은 “예술은 경제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브로드의 신념이 실제로 이행되고 있어서다. 브로드 뮤지엄은 개관 이래 현재 열리고 있는 오노 요코전 같은 기획전 아니면 언제나 무료입장이다.
브로드의 지적처럼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자기 이름 내세운 거부의 뮤지엄’이 LA에 또 선보인다. USC 인근 LA 엑스포지션 파크에 건립된 루카스 내러티브 아트 뮤지엄(Lucas Museum of Narrative Art)이 오는 9월22일 개관한다. 영화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 제작으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가 비즈니스 우먼인 아내 멜로디 홉스와 함께 15억 달러를 들여 세운 초대형 서사 예술 뮤지엄이다. 총 13에이커에 달하는 부지에 5층 높이 뮤지엄 전시 면적만 10만 스퀘어피트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일반 뮤지엄과 달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든 예술을 선보인다는 컨셉이다. 4만점이 넘는 조지 루카스의 개인 소장품을 포함 회화, 만화, 일러스트, 벽화 등 다양한 작품이 30여 갤러리에 전시된다.
설계는 자연 친화적이고 미래 지향적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국계 유명 건축가 마 얀송이 담당했다. 거대한 우주선처럼 곡선으로 지어진 루카스 뮤지엄은 입지 선정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북가주에 거처가 있는 루카스는 샌프란시스코나 아내의 주 활동 무대인 시카고에 뮤지엄 건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두 지역 모두 시민단체 반발이 심했고 각종 규제에 소송이 이어지면서 결국 부지 제공과 함께 두 팔 벌려 환영한 LA시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202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LA 시로서는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호재를 만든 셈이다.
지난 2일 열린 미디어 프리뷰에는 조지 루카스, 멜로디 홉스 부부와 함께 건축가 마 얀송, 초대 관장격인 뮤지엄 CEO 트레이시 베이츠 등이 참석, 전 세계에 뮤지엄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대부분이 호평했지만 기대 이하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기자도 여러 명 만났다. 마 얀송을 인터뷰하기 위해 많은 중국계 미디어가 참석한 것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공식 개관일까지 커뮤니티의 다양한 그룹을 대상으로 화려한 오픈 하우스 행사가 열릴 예정이라는데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비싼 입장료다.(성인 25달러, 시니어 21달러)게티와 해머, LA 현대미술관(MOCA), 브로드 뮤지엄 등 남가주의 유명 뮤지엄이 모두 무료라는 것을 고려하면 비싼 금액이다. 특히 루카스 부부는 뮤지엄 건립 비용을 전액 사재로 충당했을 정도로 재력이 막강한데 과한 입장료는 충분히 점수가 깎일만한 요소다.
‘더 브로드’가 LA 명소로 사랑을 받고 있듯 루카스 뮤지엄도 비판에서 벗어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물기 바란다.
스타워즈 시리즈에 선보인 랜드스피더 등 각종 탈 것과 의상, 소품 등이 총망라되고 이외에도 화려하게 오프닝 전시가 마련되니 새 뮤지엄 방문을 가을 나들이로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lucasmuseum.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