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Paul Gauguin, 1898, 보스턴 미술관) 그림에는 아기와 젊은 사람이 있고, 과일을 따는 남자, 신처럼 보이는 우상, 죽음을 앞둔 노인이 있다. 그림 한 장에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림 전체가 인간의 일생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작품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상해야 한다. 오른쪽에 탄생이 있고, 중앙에는 성장한 인간들이 살아가고, 왼쪽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고갱이 묻고 싶은 것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도시 아를(Arles)에 함께 창작 활동을 위한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고갱을 초청했다. 두 사람은 예술관과 성격의 차이로 끊임없이 충돌, 격렬한 다툼 끝에 고갱은 떠나고, 고흐는 정신적 충격으로 왼쪽 귀 일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이 함께 지낸 기간은 63일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화풍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긴다. 고갱은 고흐에게 상징성과 색채 구성을 더 깊게 생각하게 했고, 고흐는 고갱에게 강렬한 색채와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이야기의 마술사로 치밀한 구성과 뛰어난 전개 능력을 가진 서머싯 몸은 기괴하고도 광적인 어느 화가의 삶의 궤적을 담은 ‘달과 6펜스’를 집필한다.
소설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1848~1903)을 모티브로 삼았다. 소설은 예술에 영혼을 바친 화가의 광적인 삶을 그렸지만, 고갱의 직접적인 전기는 아니다.
소설 ‘달과 6펜스’의 ‘달’은 영혼을 매료시키는 예술적 이상과 근원적 열망을 의미하고, ‘6펜스’는 세속적 안정과 물질을 상징한다.
멀쩡하게 은행에 다니던 중년 남자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사라진다. 바람이 난 것도 사업에 실패한 것도 아니다. 이유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다.
타이티에 흘러든 스트릭랜드는 그 곳 풍경에 안주하고 아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예술에 온전히 몰입한다. 평화로운 생활 도중 나병에 걸리게 되고, 죽어가는 삶의 마지막 동안 자신의 오두막집 벽과 천장에 영혼을 쏟아부어 최후의 걸작을 그린다.
스트릭랜드는 아타에게 그림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하고, 완성된 그림은 아타와 스트릭랜드, 치료하려 온 의사 셋만이 보곤 잿더미로 사라진다.
소설 속 의사의 묘사에 따르면 ‘이건 천재다’라는 감탄사가 무의식 중에 튀어나올 정도로 압도적인 그림이었다고 한다. 화가의 영혼을 담은 마지막 작품이다.
고갱의 작품은 당시 유럽 미술의 기준에서 파격적이었다. 색을 과감하게 단순화하고 형태를 평면적으로 표현하며, 화가 자신의 감정과 상징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표현 방식은 야수파와 표현주의를 비롯한 20세기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다. 피카소와 마티스 역시 고갱의 색채와 표현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는 발 아래 떨어진 몇 푼의 동전을 줍느라고 달을 올려다볼 시간이 없는지 모른다.
과학과 철학, 종교는 ‘어디서 와서,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질문에 수천년 동안 설명하려 했지만, 삶의 의미에 대해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했다.
타이티는 상상했던 낙원이 아니었지만 고갱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실에 낙원이 없다면 자신만의 원시적인 낙원을 작품에 담기로 한다. 빛 바랜 영혼에 생의 낙원을 채색한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색채보다 벗은 체로 영혼의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인생은 지옥과 천국을 오락가락 한다. 고갱의 작품 속 사람들은 빛이 주는 천국의 색채로 지옥에서 낙원을 동경한다. 낙원을 꿈꾸는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