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건넨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다. 타인의 마음에 가닿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그런데 지난 1일 LA 소파이 스타디움에서는 그 경계가 쉽게 허물어졌다. BTS 콘서트를 앞둔 공연장 주변은 이른 시간부터 팬들로 붐볐다. 나이도 인종도 국적도 다양했다. LA뿐 아니라 인디애나와 유타, 플로리다 등 다른 주에서, 그리고 일본과 멕시코 등 해외에서 온 가족도 있었다. 여러 가지 언어가 곳곳에서 섞여 들렸다.
팬들은 처음 만난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직접 만든 슬로건과 키링, 팔찌, 포토카드를 서로 건넸다. 이름도 모르는 사이였지만 서로를 환대했다. 취재를 위해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처음에는 대부분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나도 오래전부터 BTS 음악을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대화의 공기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좋아한다’는 동사 하나가 낯선 사람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경계심이 많은 시대다. 누가 이 땅에 머물 자격이 있는지 따지는 목소리가 커지고, 국경 장벽은 이웃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확장됐다. 소셜네트워크(SNS)의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모아 각자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화면을 들여다본다. 세상은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됐지만,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법과 질서를 논하고 기준을 세우는 일은 필요하다. 공동체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를 감정만으로 풀 수도 없다. 그러나 그 모든 판단의 밑바탕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타인을 사람으로 이해하는 게 먼저다.
공동체는 각자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함께 머물 수 있을 때 시작된다. 한 사람의 자격부터 따지는 방식으론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 순서가 뒤바뀌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은 서류에 적힌 몇 글자로 전락한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본 풍경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언어도 인종도 나이도 달랐지만 같은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서 시작된 소리는 거대한 진동이 되어 관객의 몸을 타고 흘렀다. 7만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울렸다.
음악은 관객의 다양성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그들 사이에 공통분모 하나를 만들어줄 뿐이다. 그 작은 접점이 낯선 이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유가 됐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도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이런 동질감일지 모른다.
음악에는 완전한 문장이 없다. 논리적 설명이나 억지로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슬픔과 기쁨, 그리움과 위로의 감정이 음악을 통해 공명한다. 가사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느낄 수 있다.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말로는 닿지 못하는 타인의 세계가 진동을 타고 스친다. 함께 울고 웃는 일엔 어떤 합의도 필요 없다.
취재 중 만났던 한 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BTS를 보기 위해 멕시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14살 소녀였다. 2023년 1월, BTS를 좋아하기 시작한 날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연에 오는 게 처음이라며 긴장한 듯하면서도 들뜬 그 표정이 어딘가 익숙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나의 14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 BTS 콘서트에 갔던 게 2017년 12월이었다. 그들을 보겠다는 집념 하나로 혼자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그날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공연장의 공기와 머리 위로 흩날리던 컨페티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멕시코 소녀의 얼굴에서 9년 전의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살아온 곳도, 사용하는 언어도, 나이도 달랐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소녀의 마음이 어떨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