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구조사에서 이민자 수백만 명을 제외하는 방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인구조사 결과가 연방 하원 의석과 지원금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치적·법적 파장이 예상된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인구조사국은 이날 연방 관보를 통해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조사 설문에 시민권 여부를 묻는 문항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개편안은 앞으로 30일간 공개 의견수렴을 거치며, 확정될 경우 2030년 인구조사부터 적용된다.
개편안에 따르면 불법체류자는 물론, 난민·망명신청자와 취업·유학 등을 목적으로 합법적으로 임시 체류하는 외국인 등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지 않은 이민자 수백만 명이 인구조사 집계에서 제외된다.
인구조사국은 제안서 제출 취지에서 이들이 미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속해 있는 거주자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과 충분한 유대 및 충성관계가 없으면 미국의 ‘진정한 거주자’이자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멀리 미 연방의회 의사당이 성조기와 함께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개편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행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인구조사 개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20년 인구조사를 약 1년 앞둔 2019년 6월 해당 방안을 추진했으나 연방대법원의 제동으로 무산됐다. 지난해 8월에는 상무부에 불법체류자를 인구조사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조사 방식을 개편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단속과 추방을 넘어 연방 지원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인구조사로 집계한 각 주의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연방 하원 의석을 배분한다. 또한 인구조사 결과는 선거구 획정과 연방 지원금 규모를 정할 때도 주요 기준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개편안이 확정돼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이민자들을 인구조사에서 제외할 경우 이민자가 많은 지역에서 이들의 정치적 대표성이 줄고 연방 지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인구조사국이 지난 1월 발표한 2020~2024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주 가운데 외국 태생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주는 캘리포니아(27.0%)·뉴저지(23.9%)·뉴욕(22.8%)·플로리다(21.9%)등 총 4곳이었다. 이 중 플로리다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3곳은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가 승리했다.
지난해 10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사전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AFP=연합뉴스
WP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이번 제안이 법적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편안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이 시민권 여부가 아닌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만큼, 체류 신분을 이유로 특정 주민을 인구조사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인구조사국은 인구조사에서 인종, 민족 등 정보도 삭제할 것도 제안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들 정보는 선거구 획정 뿐 아니라 차별금지법 집행, 공공서비스를 위한 연방 자금 배분 등에 활용된다”며 관련 문항이 삭제될 경우 정책 결정에 필요한 데이터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