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낮에 침 못 뱉지!” “소문만복래”,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듣고, 사용하는 격언이다.
할리우드 지역 한복판 선셋 대로에 자주 가는 식당이 있다. 젊은 한인 여성이 운영하는 곳이다. 요즘은 K-food 의 열풍에 부응하느라 안주 형태의 한식(Korean modern style food) 메뉴도 선보여 할리우드를 찾는 젊은 여행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식당은 종일 여주인의 미소 띤 얼굴과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웃음이 담긴 친절하고 넉넉한 인심이 손님을 부르는 비결이며 내가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식당을 나서며 한 가지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인간은 이렇게 웃으며 서로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한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잘 웃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한동네에 사는 한인들끼리도 그렇다.
내가 사는 할리우드 인근의 할리우드 호수나 핸콕파크 인근을 매일 산책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통점이 있다. 60대 이상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아침 인사와 함께 웃는 얼굴이고, 40~50대는 반반, 40대 이하 젊은이들의 얼굴에는 미소도,건네는 인사도, 표정도 없다는 점이다.
미소가 없는 그들은 남의 일에 관심도 없고 친절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인다. 대신 손에 든 전화기를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만을 위한 그 어떤 것에 몰두할 뿐이다. 문득, 우리 후손들이 비인간적인 미래 속에서 미소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온화한 미소는 닫힌 문도 열리게 한다”고, 또 달라이라마는 “내가 가진 강력한 무기는 미소”라고 말했다. 미국 남북전쟁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나라를 안정시킨 링컨의 힘도 온화한 미소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적도 끌어안은 그의 마음속 도량의 표현이 바로 그의 미소였다.
인류의 역사에서 위기 극복의 순간에는 항상 미소가 빠지지 않는다. “칼은 성을 무너뜨려 성문을 열지만,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 성문을 열게 한다” 고 한다. 전쟁보다 더 큰 승리가 미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의 ‘염화시중의 미소'는 위대한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이제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변하고 있다. 특히 과학 문명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자칫 인류의 정신문명과 인간성을 빼앗아 가는 원흉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AI 차체가 문제가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인간이 웃음을 잃어버릴까 두렵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 자신을 지킬 것인가. AI에게 웃음을 가르칠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 후손이 AI로부터 나오는 기계적인 웃음을 배워야 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 기계적인 웃음이 어찌 인간이 낳은 아기들의 꾸밈없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인류 최초의 웃음은 30만년 전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에 출현한 이후로, 온갖 자연의 위험과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하여 “우리는 함께 무사하다” 는 생존의 안도감을 표현하면서 시작된 신호이자 언어였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 등장하기 이전에 말이다.
아니 좀 더 원천적으로 말한다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뒤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웃으셨다” 라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쁨 속에는 필경 미소가 담겨 있었으리라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그분처럼 웃을 수 있는 기능(?)을 태초부터 부여받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의 웃음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창조주의 기쁨을 기억하는 영혼의 흔적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신학적으로 치우친 사고일까?
웃음을 잃어가고 있는 신세대들의 얼굴을 미소 짓는 얼굴로 되돌려 놓는 일은 과연 어려운 일일까? 가난했어도 단간 방에 모여 두레상에 둘러앉아 상추 쌈에 꽁보리밥과 된장국을 먹으면서도 깔깔대던 가족들의 순수한 웃음,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우리의 옛 모습이 그립다. 진정한 행복이 거기 함께 있었다. 그 날들이 불과 50~60년밖에 지나지 않은 바로 우리의 세대 안에 있었지 않았던가.
어른들부터 많이 웃자. 아이들이 웃는 가정을 만들고, 이웃에게 먼저 웃어주는 사회를 만들자. 인류는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만 진화하고 웃음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상실이다.
사라져가는 미소를 복원하고 지켜내어 인간만이 지닌 미소와 따뜻함, 그리고 휴머니즘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자. 천국이 멀리 있겠는가. 서로를 향해 웃는 세상, 바로 그곳이야말로 웃음의 천국일 것이다.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