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The Greek Zorba)’를 읽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두려움과 집착을 벗고 진정한 삶의 기쁨을 발견한 조르바의 이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는 이성보다 삶 그 자체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세상을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내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과연 그런 자유를 알고,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조용히 책을 덮고 지난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오하이오주로 이전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이었다. 남편은 가족과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며 단호히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 선택 이후, 새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취직은 어려웠다. 나는 그의 잃어버린 꿈과 삶의 무게를 대신 품고 기도했다. 몇 해 동안 일하지 못한 남편 곁에서, 우리는 맨발로 끝없는 모래밭 길을 걸어가는 듯한 힘든 시간을 지냈다.
조르바는 말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는다고 삶을 아는 게 아니오. 삶은 부딪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배우는 거요.” 그의 말이 옳았다. 고요하던 삶에 닥친 풍파에 부딪치며 나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성찰하게 되었다. 그 시절, 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내게 준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켜야 했다.경제적 어려움의 시절은 단순히 불편을 견디는 일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 가족을 오히려 단단하게 빚어주었다.
조르바는 또 말한다. “고통은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들지.” 그 말 또한 진리였다. 나 역시 고통 속에서 깨어 있었고, 그 속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 25년간 나는 ‘가정폭력 여성 보호소’에서 일하며 상처 입은 여자들의 눈빛을 마주했다. 그들의 눈물은 곧 삶의 고백이었다. 단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나는 그들의 눈물 앞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 눈물의 골짜기를 함께 건너며, 세상의 그 어떤 지우개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세상에서 가장 깊은 흉터가 바로 부부간의 배신임을 처절하게 목도했다. ‘저들을 짓누르는 거대한 상처의 수렁에서 어떻게 하면 온전히 건져낼 수 있을까’ 하는 탄식은, 여전히 내 기도책 안에서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은퇴한 지 십년이 되었고, 88세 남편 곁을 지키며 조용한 일상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르바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내 삶 또한 그 못지않게 충만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조르바처럼 격정적으로 살지는 않았지만, 그가 세상과 맞서며 얻은 자유가 있었다면, 나는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며 얻은 자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유는 바람처럼 거칠고 뜨거웠지만, 나의 자유는 오래된 등불처럼 잔잔하고 따뜻했다. 나는 오늘도 그 불빛 아래서 조용히 묻는다 “진정한 자유란, 사랑을 끝까지 지켜내는 용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