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사진 프로젝트를 위해 동부지역을 방문한 일이 있다. 뉴욕에서는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플랫아이언 빌딩을 거쳐 월드트레이드센터로 향했다. 영화와 사진으로만 봤던 쌍둥이 빌딩 앞에 도착한 순간 파란 하늘을 뚫고 치솟은 거대한 모습에 압도됐다. 일정이 빠듯해 외관만 촬영하고 내부 촬영은 다음 기회로 미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수년 뒤 출근길 라디오를 통해 9·11 테러 소식을 접했다. 비상이 걸린 신문사로 AP통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들어오던 현장 사진들은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리고 거대한 먼지 구름이 맨해튼을 삼켰다.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채 대피하던 사람들과 초고층 빌딩에서 거꾸로 추락하는 남성의 모습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2001년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DC, 펜실베이니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테러로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전례 없는 충격에 빠졌지만, 역설적으로 하나가 됐다. 집집마다 성조기가 내걸렸고 정치적 성향과 인종, 종교를 떠나 희생자와 소방관, 경찰관을 추모하며 강한 연대감이 형성됐다.
하지만 9·11은 미국의 대내외 정책 방향을 바꿔놓은 역사적 분기점이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막대한 인명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9·11의 후폭풍은 국내에서도 매섭게 몰아쳤다. 연방교통안전청(TSA)과 국토안보부가 신설되면서 공항 검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됐다. 또한 애국법으로 수사·정보기관의 감시 권한도 크게 확대되면서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졌다.
9·11은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대상마저 바꿔놓았다. 로이터와 입소스의 최근 조사에서 61%가 외국 세력보다 이념을 앞세운 국내 극단주의자의 공격을 더 큰 위협으로 꼽았다. 9·11 이후 미국의 시선이 국경 밖의 적을 향했다면 이제는 나라 안의 극단주의와 폭력을 더 걱정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다큐멘터리 ‘터닝 포인트: 9·11 세대’도 테러 당시의 충격적인 장면을 넘어 희생자 가족과 그 자녀, 전쟁에 참여한 세대 등을 통해 9·11이 지난 25년 동안 미국 사회에 남긴 흔적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희생자 가족의 상처는 다음 세대로 이어졌고, 9·11을 체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전쟁의 의미와 결과를 되묻기 시작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확대됐던 정부 권력과 감시는 시민의 자유와 충돌하는 또 다른 문제를 남겼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음모론과 가짜 뉴스, 정치적 불신도 균열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인을 하나로 묶었던 9·11이 이제는 정치와 이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9·11 직후에는 민주당원인지 공화당원인지, 어느 인종이고 어떤 종교를 믿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공격받은 것은 미국이었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정치적으로 양극화되고 있지 않나 싶다.
분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망각일지도 모른다. 2001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9·11은 부모 세대가 경험한 참상이 아니라 교과서와 인터넷, 다큐멘터리에서 접하는 역사 속 한 장면이 되어 가고 있다.
25년 전 카메라에 담았던 파란 하늘 아래 월드트레이드센터도 사진 속에서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희미해진다.
9·11 이후 전국 곳곳에는 ‘Never Forget’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절대로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테러의 참혹한 장면만이 아니다. 테러 앞에서 미국인들이 보여줬던 연대와 25년 동안 전쟁과 갈등 속에서 감수해야 했던 대가까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