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노렸지만 더 크게 번영 대규모 추가 테러도 막아내 진영논리에 참사 의미 퇴색 분열 넘어 참뜻 되새길 때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조성된 추모 연못 뒤로 원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우뚝 솟아 있다.
2001년 9월11일 테러 공격을 받은 세계무역센터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당시 본지도 호외를 발행했다.
25년 전 알카에다가 노린 것은 뉴욕의 두 빌딩만이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세계무역센터는 자본주의의 심장이요, 펜타곤은 미국 군사력의 상징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이를 표적으로 삼은 데엔 분명한 세계관이 깔려 있었다. 이슬람 세계를 군사력과 자본으로 지배하는 미 제국주의를 흔들겠다는 것이었다. 오사마 빈라덴 스스로 “미국이 스스로 파산할 때까지 피를 흘리게(bleed until bankruptcy)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 뒤 미국은 어떻게 변했나.
자본주의의 심장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테러 직전 거래일인 2001년 9월 10일 1092.54였던 S&P500지수는 2026년 9월 10일 7591.70이 됐다. 약 7배다. 달러로 환산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국가별 지수를 비교하면 타 경제대국(일본 5배, 독일 3배, 중국 2배, 영국 1.9배)을 압도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경제규모(GDP)도 2001년 G7 전체의 48%였으나 최근 59%로 더 높아졌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다.
군사적으로도 알카에다가 그렸던 그림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두 차례의 긴 전쟁을 치렀음에도 해외 주둔 미군의 비율은 9·11 당시보다 낮아졌다. 비영리 공공 데이터 플랫폼인 USAFacts에 따르면 9·11 직전 미국의 현역 병력 약 138만 명 가운데 해외 주둔군은 25만5000명(18%) 정도였다. 이게 지금은 약 17만 명(13%)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알카에다가 무너뜨리려 했던미국의 동맹체제 역시 해체되지 않았다. 9·11 직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1949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집단방위조항인 5조를 발동했다. 또 19개국이던 NATO 회원국은 현재 32개국으로 늘었다.
9·11은 전술적으로 성공한 테러였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전쟁이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10일 프리프레스의 칼럼에서 “9·11 이후 미 제국주의의 종말은 찾아오지 않았다”며 진정으로 쇠퇴하고 있는 건 미국의 패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권위주의 축(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들이 실업. 인구절벽.전쟁비용 등으로 훨씬 심각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이유에서다.미국의 방어체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9·11 당시 가장 치명적인 허점으로 지적된 것은 정보기관 사이의 ‘정보 단절(Information Silo)’이었다. 미국은 이를 허물기 위해 2004년 국가정보국장(DNI)과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신설했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에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아 사전 차단식으로 수사 패러다임을 바꿨다. 또 2001년 11월엔 연방교통안전청(TSA)을 설립했고, 이후 항공권 구매 단계부터 고위험 승객을 걸러내는 ‘시큐어 플라이트’ 시스템을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25년 동안 9·11 규모의 해외 테러조직 공격은 미국 본토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헤리티지재단의 대테러 안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9·11 이후 미국 본토를 겨냥한 주요 테러 모의 60건 가운데 53건이 수사기관에 의해 사전 차단됐다. 이를 근거로 조셉 리버먼 전 연방상원의원은 “미국은 2001년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취약성을 증명하기 위해 감행한 테러가 역설적으로 미국의 가장 큰 취약점을 보강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대신 테러범에게 돌아온 결과는 직접적이었다. 빈라덴은 2011년 미군에 사살됐고, 후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도 2022년 제거됐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의 본거지를 잃었다.
승리가 공짜는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은 수조 달러와 수천 명의 병력을 잃었고, 아프간에서는 20년 뒤 탈레반의 귀환을 지켜봐야 했다. 빈라덴이 노렸던 소모전은 실패했지만, 미국에 아무 상처도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예상치 못한 내부 갈등이 움트기 시작했다. 테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싼 미국 내부의 기준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좌파가 진영논리를 펴며 비극을 마케팅 수단으로 동원한다.
최근 미시간주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압둘 엘사예드가 그렇다. 그는 2021년 9·11 20주년에 올린 글에서 “9·11 희생자를 애도한 뒤 다음 날 미국의 전쟁으로 숨진 약 100만 명을 애도하겠다”고 했다.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도 비슷한 메시지를 반복했다. 둘 다 좌파 무슬림이다. 시사매체 내셔널 리뷰는 이를 물타기(whataboutism) 전술로 규정했다.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와, 미국이 그에 대응하면서 발생한 상대측 피해를 동등하게 놓음으로써 테러의 책임을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다른 사건을 끌어와 책임의 본질을 흐리려는 소련의 선전 방식과 같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오류와 민간인 피해를 비판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9·11 이후 확대된 정부 감시와 무슬림·이민자를 향한 편견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문제는 그 비판이 9·11의 원인과 책임까지 상대화할 때 벌어진다. 이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뒤이은 가자전쟁을 거치면서 좌우 진영의 공방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특히 대학가 중심으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을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거나 유대인 전체를 이스라엘 정부와 동일시하는 목소리까지 등장했다.
미국이 내부 진통을 겪는 동안 테러의 양상은 바뀌고 있다. 2001년처럼 한 조직이 수년간 준비해 여객기 여러 대를 동시에 납치하지 않아도 된다. 드론과 인공지능, 암호화 통신과 온라인 급진화는 과거 대형 테러조직만 가질 수 있었던 능력을 소규모 집단이나 개인에게까지 내려보내고 있다.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크리스티나 매캘리스터는 “기술 확산이 대량살상무기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고 했다.
9·11이 미국에 남긴 유산은 통합된 정보기관과 삼엄해진 보안검색대만이 아니다. 테러 직후 미국인들은 종교와 인종을 넘어 헌혈과 구조, 성금 모금에 나섰다. 소방관과 경찰관, 군인 등 제복을 입고 공공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도 높아졌다.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말은 위기에 대응하는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당시를 회상하며 “자유를 지키는 과정에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기억하길 원했다”고 말했다. 동시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날의 헌신과 희생이 지닌 의미가 잊힐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당시 미국을 이끌었던 그의 말에서 이끌어낼 메시지가 있다.
전쟁의 잘못을 비판하되 테러의 책임을 흐리지 않는 것. 소수자를 보호하되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를 거두지 않는 것.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힘을 갖되 그 힘으로 국민의 자유를 삼키지 않는 것. 그 균형을 지키는 게 9·11 테러 25년이 미국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