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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美물리학회장 김영기 “이휘소, 살아 계셨다면 노벨상”

중앙일보

2026.09.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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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EBS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EBS

한국인 최초로 미국물리학회(APS) 회장을 지낸 김영기(64) 미국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김 교수는 오는 10월부터 방송되는 한국교육방송(EBS)의 교양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에서 만물의 기원인 작은 알맹이와 140억년 우주의 역사에 대해 강의할 예정이다.

김 교수의 특기는 양성자와 반양성자, 혹은 양성자끼리 서로 충돌시켜 소립자의 질량 근원을 알아내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그를 가리켜 ‘충돌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지난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김 교수와 만나 미국 대학 현황과 입자물리 연구 흐름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한국 대학들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다. 미국 상황은 어떤가.
A : AI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이니, 도대체 대학의 역할이 뭐가 될까 논의가 많다. 다만 물리학자로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즘 학생들은 답을 너무 빨리 알아낸다는 점이다. 약간 막히는 게 있으면 AI에게 물어보고, 답도 쭉쭉 잘 나온다.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이틀 정도 끙끙거리며 고민해 답을 찾아가는 경험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과학 연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한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며 묵묵히 고민하는 끈기가 중요하다.


Q : 2024년 미국물리학회 회장을 지냈다. 개성 강한 과학자들을 어떻게 이끌었나.
A : 미국에서 박사 과정 시절부터 입자 검출기를 만들고 데이터로 실험을 하면서 리더십을 배우고 키웠다. 대학 1~2학년 때 동아리 탈춤반에서 활동하며 선후배, 동기들로부터 배운 인간관계와 리더십도 학회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됐다.
2016년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미국 예일대에서 강연한 입자물리학 자료. 원자와 원자핵, 양성자와 중성자, 쿼크가 발견된 시기를 표기했다. 사진 예일대

2016년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미국 예일대에서 강연한 입자물리학 자료. 원자와 원자핵, 양성자와 중성자, 쿼크가 발견된 시기를 표기했다. 사진 예일대



Q :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한국에서도 국립대 중심으로 입자물리학에 필요한 가속기 연구에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A :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중이온가속기를 활용하기 위해 충남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인근에 과학벨트를 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속기를 활용해 소립자를 연구하는 건 막대한 예산과 인력, 기술이 필요하다. 한 국가 안에서만 이뤄질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 일본 가속기에는 국제 공동 연구진이 같이 참여한다. 한국이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계속 국제 연구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Q : 트럼프 행정부가 유학생 비자를 4년으로 제한해 미국 유학을 머뭇거리는 분위기다.
A : AI나 양자컴퓨터와 같은 경우는 경제와 국방 분야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분위기이지만 기초 과학에서 국제 협업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국 에너지부와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협력의향서를 체결하고, 전자-이온 충돌기나 심층 지하 중성미자 실험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방송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EBS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가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방송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EBS



Q : 최근 한국에서는 중입자 가속기로 암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입자물리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A : 내가 30년 넘게 소립자 연구를 했던 미국 페르미연구소에서 1980년대부터 병원과 기업체에 가속기 기술을 전수했다.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와 같은 입자의 에너지와 빔(Beam·입자 다발)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그런 기능으로 정상세포를 피해 암세포만 타격할 수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국제 공동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게 인터넷의 시초인 월드와이드웹(WWW)이 됐다.


Q : 입자물리만 40년 가까이 연구했다. 그동안 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 이론으로만 추정했던 힉스 입자가 2012년에 발견되면서 최근엔 그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는 편이다. 가속기를 이용해 질량이 큰 소립자들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힉스 입자의 질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힉스 질량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가속기의 에너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 수 있다.


Q :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실존 인물이었던 고 이휘소 박사(1935~1977)가 힉스를 연구했다.

A : 살아 계셨다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분이었다. 그의 제자였던 고 강주상 교수(1941~2017)가 고려대에서 양자역학을 가르치게 되면서 내가 대학 때 입자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소설에서 그려진 핵물리학자는 허구다. 순수 입자물리학자셨다. 내년이 타계 50주년이라 학계에서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영기 교수 = 1962년 경북 경산 과수원집 넷째 딸로 태어나 대구 남산여고(현 남산고)를 거쳐 1980년 고려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1990년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뒤 1996년부터 버클리-캘리포니아대 교수를 지냈다. 이후 2003년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05년 호암상 과학분야 수상자로 선정됐다. 2006~2013년 미국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2002년 시드니 네글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와 결혼했다. 결혼식은 대구에서 전통혼례로 치렀다.



김민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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