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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여정 꿈 샀다”…이창동, 韓 최초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중앙일보

2026.09.12 14:01 2026.09.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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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AP=연합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AP=연합

“노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끊어져가는 시대에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상을 주신 것은 그 질문을 계속 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거장 이창동(72)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떨렸다.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폐막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2등상인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2012)가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지만, 심사위원대상은 이번에 최초다.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2002)로 감독상·신인배우상(문소리) 2관왕에 올랐던 이 감독이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가능한 사랑’으로 24년 만에 한국영화에 새 기록을 안겼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에 참여한 홍콩 거장 조니 토(두기봉) 감독이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에게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트로피를 건넸다. AP=연합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에 참여한 홍콩 거장 조니 토(두기봉) 감독이 '가능한 사랑'의 이창동 감독에게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 트로피를 건넸다. AP=연합


현지 시간 저녁 8시 30분경 올해 심사위원장인 할리우드 감독 겸 배우 매기 질렌할의 호명에 무대에 오른 이 감독은 “그라찌에(Grazie), 감사합니다”라고 이탈리아어·한국말로 인사부터 건넸다. “귀한 상을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드리고 24년 만에 이 아름다운 축제에 불러준 베니스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면서다. “수많은 사람의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으면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영화를 기다리느라 매일 술을 마셔야 했던” 동생이자 제작자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또 “오래 영화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준, 사랑하는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이자, ‘버닝’(2018) 이후 8년만의 복귀작이다. 투자 난항을 겪던 중 넷플릭스와 손잡으며 제작에 급물살을 탔다.

12일(현지 시간) '가능한 사랑'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월드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이창동 감독(왼쪽부터)과 주연 배우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 등이 포즈를 취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날 최초 상영에서 7분간의 기립박수를 끌어내며 올해 경쟁부문 진출작 21편 중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꼽혀왔다. EPA=연합

12일(현지 시간) '가능한 사랑'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월드프리미어 레드카펫에서 이창동 감독(왼쪽부터)과 주연 배우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 등이 포즈를 취했다. '가능한 사랑'은 이날 최초 상영에서 7분간의 기립박수를 끌어내며 올해 경쟁부문 진출작 21편 중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품에 꼽혀왔다. EPA=연합

이 감독이 2000년대 한국 대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 진압한 사건에 영감 받아 ‘버닝’의 오정미 작가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해고노동자 부부(전도연·설경구)와 그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제작자(조인성) 부부의 욕망이 엇갈린 여름 한때를 그렸다. ‘박하사탕’(2000) ‘오아시스’를 함께한 설경구, ‘밀양’(2007)의 전도연과 다시 뭉쳤다. 무대에서 심사위원인 홍콩 감독 조니 토(두기봉)에게 은사자상 트로피를 건네받은 이 감독은 “이 영화의 생명을 준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 네 분에게 감사드린다. 이 상은 여러분들의 것”이라 배우들의 열연에 공을 돌렸다.

폐막식 후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그는 “조여정 씨가 좋은 꿈을 꿨다고 해서 샀다. 한국에서 그런 풍습이 있는데 그 꿈이 이런 행운을 가져온 것 같다”면서 “사람들이 극장에 모이기도 힘들어하고 각자 영화에 대해 서로 나눴던 것이 점점 그 관계가 끊어진다고 할까. 점점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시대”란 고충도 밝혔다. 또 ‘가능한 사랑’에서 다큐멘터리 감독 캐릭터를 통해 “과연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그 질문을 저 스스로 하고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번외상인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도 받았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은 ‘가능한 사랑’에 대해 “착취, 계급, 환멸, 사랑, 욕망, 그리고 이야기의 소유와 윤리를 탐구하는 미묘한 권력 게임들이 다층적이고 완벽한 속도로 전개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배우 전도연의 '가능한 사랑' 연기에 대해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명연기"라 극찬하기도 했다. 로이터=연합

배우 전도연의 '가능한 사랑' 연기에 대해 베니스영화제를 찾은 미국 매체 인디와이어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명연기"라 극찬하기도 했다. 로이터=연합

전도연은 이번 영화로 “100년에 한 번 나올법한 명연기”(미국 연예매체 인디와이어)라 극찬받았지만 코파 볼피-여우주연상은 황금사자상 수상작 ‘언노운 우먼’의 신인배우 마틸드 아르셀에게 돌아갔다. 메이 엘 투키 감독의 ‘언노운 우먼’은 올해 경쟁부문 21편 중 여성 감독이 단독 연출한 유일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직후 덴마크에서 독일군과 관계 맺었다는 이유로 사회적 낙인에 시달린 여성의 삶을 그려 황금사자상·여우주연상 2관왕에 올랐다.

이를 비롯해 올해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은 팔레스타인·젠더·노동 등 정치적 화두가 도드라졌다. 3등상인 심사위원특별상은 경쟁 부문의 유일한 다큐멘터리이자 개막일 불과 9일 전에 경쟁 부문에 합류한 ‘나자’가 받았다. 이스라엘 군 관계자들이 가자 지구 전쟁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조직적인 살해 혐의에 대해 내부 고발한 작품으로, 레이첼 조어, 유발 아브라함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아 올해 최장 24분 30초의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올해 83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언노운 우먼'의 이집트계 덴마크 감독 메이 엘투키(왼쪽부터)와 첫 영화 주연으로 코파 볼피상-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마틸드 아르셀이 폐막식 후 트로피를 들고 자축하고 있다. AP=연합

올해 83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언노운 우먼'의 이집트계 덴마크 감독 메이 엘투키(왼쪽부터)와 첫 영화 주연으로 코파 볼피상-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마틸드 아르셀이 폐막식 후 트로피를 들고 자축하고 있다. AP=연합

감독상은 20년간 만든 역작 ‘다우’를 선보인 러시아 반체제 감독 일리야 크르자노프스키가 받았다. 소련의 실존 천재 물리학자의 삶을 토대로 전체주의 체제와 인간 본성의 역학관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해 러시아 시민권을 공식 포기했던 크르자노프스키 감독은 이 영화의 은사자상을 우크라이나에 헌정했다.

각본상은 프랑스 거장 스테판 브리제 감독이 대기업 인사부장의 고뇌를 담은 ‘착한 꼬마 병사’, 코파 볼피-남우주연상은 1973년 칠레 쿠데타 직전을 다룬 첩보 스릴러 ‘와일드 호스 나인’의 괴짜 CIA 요원 배우 존 말코비치가 받았다.
한편, 올해 평생공로상은 미국 배우 조지 클루니에게 돌아갔다.




나원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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