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겨냥해 ‘오빠 게이트’를 터뜨린 한동훈 의원. 민주당은 이를 ‘수사자료 유출 게이트’로 규정하며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역공에 나섰다. 국민의힘에선 청문회에 한동훈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혼자 광내고 노는 사람”이라는 조롱이 동시에 터졌다. 여야 모두의 한복판에 선 한동훈. 그는 왜 늘 가장 뜨거운 전장을 택하고, 정면충돌을 피하지 않을까. 한동훈이라는 사람의 기질을 들여다봤다.
“얼맙니까?” 술값 다 냈다…스폰서 물먹인 초임 한동훈
그 횟집의 독방에는 산해진미가 즐비했다. 점잖은 양복쟁이 대여섯명이 그 공간을 점유하면서 웃음과 술잔을 주고받았다. 연령의 범위는 넓어 보였다. 초로의 신사가 있는가 하면 아직 양복이 어색한 약관의 청년도 보였다. 주연을 주도하는 건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두 장년 신사들이었다.
그중 눈에 띄게 굳은 표정으로 묵묵히 앉아있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술잔 대신 물잔만 연신 들이켜면서 가끔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한때. 사진 한동훈팬클럽
그들은 검사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 대부분은 검사였다. 딱 한 명, 주연의 주도자가 맞상대하던 그 초로의 신사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물잔만 들이켜던 그 검사가 일어섰다.
" 저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서 보겠습니다. "
못마땅한 시선을 온몸에 받아 안은 채 방을 나선 그는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곧바로 출입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는 입구 부근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린 뒤에야 문을 나섰다.
그가 떠난 지 한참 뒤 주연이 끝나자 무리가 일어섰다. 맨 앞에 그 초로의 신사가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스폰서’였다. 그 자리의 좌장이던 간부 검사의 친구인 그 기업인은 정해진 수순인 양 지갑을 꺼냈다. 그런데 카운터에서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1989년 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고 1학년 14반 교실.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는 일진, 한쪽은 반장이었다. 몸이 부딪히고 주먹이 오갔다. 옆 반 반장이던 건축가 김호민(EBS ‘건축탐구-집’ 진행)은 그 장면을 기억했다.
“보통 범생이들은 그런 일을 피한다. 괜히 엮이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런데 반장 한동훈은 왜 일진과 맞붙었을까. 뜻밖의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199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한동훈은 또 한 번 눈에 띄었다. 대학 1학년 첫 오리엔테이션장을 뒤집은 사건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