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수송망이 잇따라 막히고 있다. 미국이 시작한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에 제약이 걸린 상황에서 그간 우회로로 활용해왔던 홍해 항로가 사실상 후티의 통제하에 들어간 데 이어, 11일(현지시간) 육상 수송로까지 드론 공격을 받고 차단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아일랜드 오픈' 골프대회에 참석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사우디의 육상 원유 수송 파이프가 공격받은 것의 배후를 이란이라고 지목하면서도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 “이란 자체는 약해졌을지 모르지만, 본격적으로 중동 전역에 배치된 ‘이란 네트워크’가 가동됐다”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에 대해 자신의 골프장에서 열린 골프대회 참석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구체적 대응책을 내놓지 않은 채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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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까지 막히나…사우디 원유 파이프 피격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10일 리야드와 메디나를 겨냥한 드론 공격으로 핵심 송유관인 동서 파이프라인 가동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해당 라인은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예멘에 거점을 둔 친(親)이란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홍해까지 막힌 뒤 또다른 대체 수송로로 사용해오던 것이다.
현지시간 10일 영상 속에서 후티 반군 대원들이 예멘 하자(Hajjah)로 알려진 한 장소의 지면에 쓰러져 있는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이 드론이 사우디 측의 무장 정찰 드론 ‘카라옐(Karayel)’의 잔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후티는 홍해 연안의 주요 항구인 모카를 장악한 뒤, 바브엘만데스 해협 내 요충지인 페림섬까지 장악한 상태다. 이곳은 홍해로 진입하는 바브엘만데스 해협의 물길을 나누는 전략적 요충지다. AFP는 “후티가 홍해로 진입하는 해협의 통제권을 사실상 확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해가 반군의 통제권에 들어간 직후 사우디의 육상 수송로까지 드론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드론이 발사된 곳은 예멘이 아닌 이라크였다. 이라크 총리실은 12일 0시를 넘긴 시각 해당 드론이 자국에서 발사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와 관련 군 지휘관 1명을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는 드론 공격의 정확한 주체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AP는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이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와 함께 사우디를 겨냥한 군사 작전을 공동 전개해왔다”며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라크 내 이란 세력을 지목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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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배후는 이란”…사우디 지원 요청은 거부
아일랜드 오픈 골프 대회 참석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트럼프는 이날 아일랜드 더불린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격의 배후를 이란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아마 그럴 것”이라며 “그들은 아마 지금 기세등등할 것”이라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아일랜드 오픈' 골프대회에 참석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사우디의 육상 원유 수송 파이프가 공격받은 것의 배후를 이란이라고 지목하면서도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AP=연합뉴스
트럼프는 이어 후티 반군의 홍해 진격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티 반군이 우리에게 연락해왔는데, 우리와는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미국을 포함한)대부분의 선박 통행을 허용하고 있고, 다만 한 나라(사우디)에 대해서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동의 핵심 동맹국으로 평가받는 사우디의 원유 수출길이 사실상 막힌 상황임에도, 미국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이다. 이번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의 우회 지상 송유관이 파괴되기 전에도 사우디의 지난달 원유 수출량은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9일 후티 군사 언론이 공개한 영상에서 예멘이 사우디를 향해 드론을 발사하는 장면이 확인된다. EPA=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망 왕세자가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군의 직접 공격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이날도 “후티는 미군이 개입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그들은 우리와는 싸우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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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란 네트워크 가동 방아쇠 당겼다”
트럼프는 중동 상황과 관련한 전망에 대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중동 전문가들은 후티 반군의 홍해 항로 통제와 이라크에서 발사된 육상 수송로에 대한 드론 공격에 대해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현지시간 12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후티 반군 전문가 애덤 배런은 이날 WP에 “이란전쟁으로 이란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공격으로 이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이란의 중동 내 네트워크가 얼마나 강력하고 통합적으로 작동하는지가 입증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는 이란이 수년간 준비하고 추진해왔던 것”이라며 “이란전쟁으로 인해 마치 방아쇠가 당겨져 중동 내 이란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상황으로 봐야한다”고 전했다. 이란 자체는 약화됐을지 몰라도 이란의 대리 세력들이 거둔 군사적 성공은 중동에서 오히려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것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중동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오픈' 골프대회가 열린 자신 소유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링크스에서 차남 에릭 트럼프와 함께 선수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골프대회 참석을 앞두고 이란전쟁의 종료 시점에 대해 “아마 가까운 시점이 될 것이고, 아마 중간선거 직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끝나면) 유가는 급락하게 될 것”이란 주장을 반복했다.
트럼프의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는 계속 치솟고 있다. 이란전쟁 직전인 지난 2월 27일 배럴당 70달러 선이었던 국제유가는 이제 110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특히 갤런당 2.98달러였던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평균 4.3달러를 넘어서며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