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건강하게 늙는 사람이 성공한 자입니다. 일찍 병들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100세 인생을 살고 있는 근사한 어르신들을 만나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 이 나이에 칼질하고 불 앞에 서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
심영순(89)의 포스는 여전히 남달랐다. ‘옥수동 선생님’으로 불리는 전통 한식 선구자 1세대 요리 연구가인 그는 ‘한식대첩’의 심사위원은 물론,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해피투게더’ 등 당대 최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촌철살인의 독설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다 돌연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고, 세간에는 건강 이상설 등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사실 그는 ‘석 달 시한부’를 선고받은 췌장암 환자였다. 설상가상 십이지장궤양까지 겹치자 볼이 핼쑥하게 파이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가족들마저 마지막을 준비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수술도, 항암 치료도 없이 심영순은 1년 만에 병석을 훌훌 털고 일어났다. 자기공명영상(MRI)에서 암 덩어리가 말끔하게 사라졌단다. 의사도 이를 ‘기적’이라 했다. 암에서 일어난 심영순은 일주일에 두 번 요리연구원에 직접 등판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현역’이다.
" 몸에 좋은 것만 넣어 만든 ‘이것’을 매일같이 먹었으니, 암이 안 사라지고 배겨? "
심영순 요리연구가(왼쪽)는 20여 년 전 췌장암을 둘째 딸 장혜주씨(오른쪽)의 식이요법으로 이겨냈다. 김경록 기자
심영순은 암에 걸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둘째 딸이 매일 끓여준 이 음식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며 세세한 레시피를 알려줬다. 〈100세의 행복3〉 3화에서
‘구순(九旬)의 한식 대가’ 심영순을 암에서 살려낸 음식 레시피부터 운동법까지 낱낱이 공개한다.
취재진은 인터뷰 내내 심영순 곁을 떠나지 않은 남편 장영순(93)씨의 정정함과 날렵함에 한 번 더 놀랐다.
“내 건강은 평생을 아내가 차려준 밥상을 먹고 산 덕분이지.”
50년 넘게 한식 연구에만 몰두한 심영순의 부엌. 이곳에는 건강하게 오래 살아가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사실 심영순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심영순은 오로지 ‘한식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며,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취재진의 간곡히 설득한 끝에 그는
“생애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되겠다”며 만남에 응했다.
요리연구원에서 만난 그는 2000년대 TV 화면 속 모습 그대로였다. 청록빛 고운 한복 자태에, 숱 많고 탄력 있는 백발의 헤어 스타일.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다.
더더욱 놀라운 건 요리하는 그의 모습 자체였다.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섬세함, 시시각각 재료의 상태를 읽는 기민함, 칼끝의 힘을 다루는 유연성까지.
심영순은 부엌에 선 것만으로 자신의 건강을 증명했다.
이렇게 꼿꼿한 그에게도 사선의 고비가 있었다.
20여 년 전, 초기 증상이 거의 없고 5년 생존율이 10%대에 불과해서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불리는 췌장암에 걸렸을 때다. 의사는 고작 3개월 시한부를 선고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하던 날, 가족 모두가 심영순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처럼 펑펑 울었다.
그러나 둘째 딸 장혜주씨는 어머니 심영순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곧장 보따리를 싸 친정집으로 들어갔다.
심영순의 식탁은 그날로 완전히 달라졌다.
딸 혜주씨는 커다란 냄비에 이 재료들을 넣고 약한 불에 약 4~5시간 동안 오래 고았다. 그 ‘보약탕’을 엄마에게 매일 만들어줬다.
그렇게 심영순은
항암 치료 대신 딸의 식이요법을 선택했다. 딸의 지극정성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심영순의 기력이 차츰 돌아왔고 식이요법을 한 지 1년 만에 암이 싹 사라졌다.
그는 몸에 좋다고 해서 음식을 아무 때나 무작정 밀어 넣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핀다. 좋은 음식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도록 속을 비워내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그가 수시로 마시는 음식이 있다.
“이 주스를 마시고 밥을 먹으면 이전보다 짠맛·단맛·향 등이 매우 강하게 다가와요. 특히 나물을 먹을 땐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니까. 원재료인 나물 특유의 향과 흙맛, 바람맛까지도 느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