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이 갓 넘은 아이는 할아버지의 눈을 또렷이 쳐다봤다. 아이의 할아버지인 김모(59)씨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품에 안긴 아이는 지난 4월 김씨의 지적장애인 딸(29)이 낳았다. 인지 능력이 7세 수준인 딸은 자신이 다니던 인천의 한 장애인 표준사업장 임원 60대 A씨에게 지난해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김씨가 성폭행 피해를 입은 지적장애인 딸이 출산한 아이를 안고 있다. 변민철 기자
김씨는 딸의 배가 불러오자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지난봄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아파트 주민이나 사업장 직원 등을 의심하며 수사 결과를 기다렸고, 그사이 임신 후기였던 딸은 아이를 끝내 출산했다. 김씨는 “딸이 워낙 말랐고 말수도 적은 편이라 임신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고위험 산모로 분류돼 산부인과도 여러 곳을 다녔다. 딸에게 장애가 있다 보니 출산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후 6월쯤 A씨와 아이의 유전자(DNA)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생부가 밝혀졌다. 검찰은 최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장애인준강간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A씨가 임원으로 있던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현재 그의 아들이 대표를 맡고 있다. 김씨는 “장애인 친화적인 표준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A씨가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딸을 회유하고 협박한 정황도 있다”며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여전히 사과 한마디 없고, 양육비에 쓰라고 1원 한 푼도 보태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아이를 입양 보내고자 했지만, 고민 끝에 직접 양육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씨는 “나도 사람인데 아이를 보면 미운 마음이 들 때도 많다”면서도 “이 조그마한 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장래 생각했을 때 가족과 지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양육·돌봄 위해 사직…각종 복지 지원은 못 받아
그는 희귀병을 앓는 지적장애 딸과 아이를 돌보기 위해 얼마 전 10년 넘게 몸담은 직장을 그만뒀다. 평일에는 아이돌보미가 집으로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지만, 환갑을 앞둔 김씨에게 딸과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것은 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딸도 아이한테 애착은 있지만, 양육을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나도 이제 몸에 성한 곳이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돌보고 싶은데,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 중소기업 60대 임원 A씨가 8월 12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씨는 현재 실업급여와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복지시설 등에서 유모차와 기저귀 등 육아용품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원래는 딸도 수입이 있었지만, 표준사업장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한 모습을 본 김씨는 딸을 다시는 일터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김씨는 “내가 일을 못 하니 앞으로가 너무 막막하다”며 “아이가 그늘지지 않고 밝게 컸으면 좋겠는데, 내가 여력이 안 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닌 데다 재산도 있어 각종 복지 지원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현재 수령 중인 실업급여가 중단되면 김씨는 딸과 아이를 뒤로하고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한다. 김씨를 돕고 있는 인천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지자체에서도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각적으로 검토해봤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성폭력 사건 전문 천정아 변호사는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하고, 필요하다면 재산을 압류하는 등의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며 “다만 가해자 명의의 재산이 없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