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노조의 요구만으로도 돈을 감당하기 어려워 준공영제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 같아요. 이대로라면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 그다음 해가 되든 준공영제와 통합환승서비스가 멈출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노조)이 예고한 16일 파업에 대해 서울시 고위관료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서울시가 재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감당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제론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도 했다.
그가 이렇게 토로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이번 파업만 놓고 보면 통상임금 산정기준과 임금인상률이 쟁점이다. 노조는 ▶통상임금 산정 기준시간 176시간 적용 ▶시급 7.85%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기준시간을 월 209시간으로 해서 임금을 지급한 뒤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소송들의 확정 판결이 나오면 그 차액을 정산하자는 입장이다. 노조 요구대로 다 하면 연간 5400억원가량의 부담이 추가로 생긴다는 것이다.
기준시간은 월 단위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을 계산하는데 쓰이는 지표로 기준시간이 짧을수록 시간급(시간당 임금)이 높아지게 돼 회사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도 그만큼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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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1월 이어 또 파업 선언
사측을 대표하는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조합)은 “노조 요구를 다 수용하면 근속 22년 이상인 최고 9호봉 기사의 연봉이 8500만원까지 치솟는다”며 '부산 등 다른 광역시와 비슷한 10.32%의 임금 인상안을 제안했지만 노조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반면 노조 측은 “기준시간 176시간은 이미 대법에서 확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버스노조가 파업한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역 버스환승센터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앙일보
이런 상황에서 연말께로 예상되는 통상임금 관련 소송 결과도 '지뢰밭'으로 불린다. 서울 64개 버스회사의 근로자 1만7000여명이 각 버스회사를 상대로 통상임금 증가분 지급에 대해 청구한 소송으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더해서 산정한 각종 수당과 기존에 지급한 수당의 차액을 달라는 요구다.
서울서부지법을 비롯해 서울중앙·동부·남부·북부지법과 수원지법 성남·안산지원 등 7개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여기서도 기준시간이 주요 쟁점이다.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약 5000억원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노조 주장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면 사측은 기본적으로 줘야 할 소급분(약 5000억원)에다 기준시간 변경에 따른 각종 수당의 차액까지 해서 총 1조원가량을 부담해야만 한다. 게다가 기준시간 변경은 일회성이 아니라 매해 임금에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시내버스 준공영제에서는 사측의 부담이 결국 서울시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노사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노정협상'으로 불리는 이유다. 버스 준공영제는 요금 수입이 일정 기준(표준운송원가)에 못 미치면 서울시가 차액을 메워주는 방식이다.
이 중 운전기사 인건비와 유류비 등은 실비정산이 원칙이다. 통상임금 소송이나 노사 협상의 결과로 인건비가 오르게 되면, 요금을 인상해 수입금을 늘리지 않는 한 서울시가 지원해줘야 할 돈이 그만큼 증가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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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매년 4000억 넘게 지원
이미 서울시의 부담은 상당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시기였던 2022년과 2023년에는 각각 8114억원과 8915억원이 투입됐고, 2024년과 지난해에도 4000억원과 4575억원씩이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통상임금 소급분과 대폭적인 임금 인상분까지 겹쳐지면 서울시로서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올해 1월 파업에 이어 노조가 다시 파업을 선언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버스업계 안팎에서 준공영제를 이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현행 준공영제의 틀을 과감하게 다시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로선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선 현행 사후정산을 사전정산 체계로 바꿔 경영진과 근로자의 책임을 좀더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미리 지원금을 지급하고, 각 회사가 비용 절감 등을 통해 효율화를 꾀하고 인센티브도 얻는 방식이다.
준공영제에 민영화의 장점을 가미하는 셈이다. 김주영 한국교통대 교통정책학과 교수는 "비용단가에 따라 계약형 준공영제를 해외처럼 시행하고, 사업자와 노조가 비용 절감 방안을 찾아내 효율성을 살리고 재정 지속가능성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시도 지난 2024년 준공영제 20주년을 맞아 사전정산으로의 전환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 실행되지는 않고 있다. 김신 서울시 버스정책과장은 “통상임금 논란 등으로 늦어졌는데 사전정산으로 바꾸겠다는 건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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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정산 등 준공영제 개편 필요
비용 증가분을 서울시가 보전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서울시와 사업자, 근로자가 비용과 위험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형태로 준공영제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비용 증가 요인이 있을 때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노조의 요구는 준공영제 특성상 시민의 세금에 기반해 재정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현안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시민의 의견 수렴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조 등 일부에서 제기하는 버스 완전공영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김동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서울시가 버스회사를 인수해 직접 운영하는 완전공영제는 인수비용과 조직 비대화의 문제가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완전공영제는 사실상 공기업화되는 것으로 이로 인한 비효율과 관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1일 서울 은평구 진관공영차고지에 세워진 버스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내건 '파업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또 물가와 연동해 버스 요금을 일정 간격으로 올리는 방안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준공영제는 안정적인 재원 확보 없이는 유지가 어렵다”며 “일정부분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버스 서비스 제공이라는 준공영제의 취지에 맞게 시내버스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철도·지하철·항공처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파업 때도 일정 비율의 버스는 운행토록 하자는 취지다.
그동안 서울시가 여러차례 정부에 건의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필수공익사업 지정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고용노동부가 부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버스업계에선 준공영제로 인한 재정 부담 증가와 잦은 파업 등이 자율주행 도입을 가속화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버스업계 관계자는 “운영비의 70%를 인건비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자율주행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며 “시내버스는 정해진 노선만 다니는 거라 자율주행 도입이 더 용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의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20여 년을 거치는 동안 적지 않은 논란과 환경 변화를 겪어 왔다. 이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정 부담이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넘어서서 안정적인 서비스를 유지하느냐에 준공영제의 운명이 달린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