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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감속 외치는데…가속페달 트럼프 vs 세 불리는 習 ‘AI 치킨게임’

중앙일보

2026.09.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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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초인간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업계의 경고가 터져 나온 직후 미·중 정상이 각기 ‘규제 해제형 속도전’과 ‘우군 결집형 규모전’에 방점을 찍으며 AI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 간 패권 경쟁으로 인해 안전론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오는 2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AI 위험 관리와 관련한 접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3일(현지시간)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 소유 둔베그 골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AI 분야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이고, 솔직히 나는 그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고 답했다. “AI에서 이기는 쪽이 승리한다. 알다시피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표현이고, 사실이기도 하다”면서다.

트럼프는 또 “안전장치를 둘 수도 있고 이것저것 조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부정적인 세력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AI 기업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3800 단어 분량의 에세이에서 안전 조치가 기술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업계가 AI 모델 역량을 향상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 다음날 나왔다. AI가 다음 세대 AI 개발을 돕는 재귀적 자기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이 시작돼 성능 향상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아모데이는 우려했다.

일론 머스크는 곧바로 “다리오가 맞다”고 호응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최전선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역시 “올바른 방향”이라며 가세했다. 앞서 지난 8일 앤트로픽 전직 AI연구원 제이컵 콕슨은 “AI가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남기며 퇴사했다.

최첨단 AI 모델 개발을 위해 경쟁해온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면서 세계적 파장을 불렀는데, 트럼프는 규제 해제와 인프라 투자를 중심에 둔 속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AI 모델 개발 감속 요구를 일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며 “트럼프는 이번 발언을 통해 갈수록 기술계와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는 AI 개발 속도와 관련한 논쟁에서 자신은 ‘전속력 전진(full-speed-ahead)’이라는 확고한 입장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방점을 찍는 건 대중 견제다. 규제를 줄이고,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반도체 시설 건설을 서둘러 AI전쟁에서 중국보다 먼저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규제 해제형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같은 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8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중국 주도의 ‘브릭스 AI 오픈소스 지대’ 창설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브릭스 국가들에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응용 협력을 지원하고, AI 관련 연수·교육을 통해 개방형 AI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1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연합뉴스\

이런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참여국들은 자연스럽게 중국 모델과 기술 규격에 익숙해지게 된다. 결국 속내는 저비용 오픈소스 모델을 브릭스에 보급해 궁극적으로 ‘중국형 AI 표준’을 선점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자 정상회의라는 무대에서 협력의 언어를 빌었지만, 결국은 중국 중심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세 불리기로 볼 여지가 크다.

이처럼 업계에서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자고 촉구했으나, 직후 미·중 정상은 가속과 확장을 택하며 사실상 이런 경고를 무시하는 기류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행정부와 의회에서도 명확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AI의 실존적 위협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관심한 태도는 행정부와 그가 여전히 강력히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부 일각에서는 AI의 위험성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트럼프의 뜻을 거스르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NYT는 의회에서도 최근까지 AI가 중간선거 쟁점으로 부상한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유권자 반감과 관련된 문제 정도로만 인식됐다며 “AI의 잠재적 파급 효과를 살펴보려는 과거의 노력은 청문회와 양당의 우려 섞인 성명 발표로 이어졌을 뿐 그 이상의 성과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즉각적인 시스템 가동 중단을 가능하게 하는 이른바 ‘킬 스위치(kill switch)’ 의무화 등을 포함한 각종 입법안이 중간선거를 두 달 앞두고 실질적인 동력을 얻을 가능성도 작아 보인다는 것이다.

AI 규제 문제가 당파적 쟁점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민주당 비공개 모금행사에서 “AI는 민간의 손에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당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할 경우 AI 정책에 관한 공개 논의의 틀을 마련하고, 2028년 대선 주자들도 안전·경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응책을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AI 규제가 미·중 간 패권 경쟁과 미국 내 당파 대립에 얽힐 경우 통제 불가능한 AI의 위험에 대한 대응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류 멸종을 경고한 콕슨은 이날 NBC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같은 기술을 개발하며 우리와 같은 문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AI는 신중하게 개발돼야 한다는 같은 결론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양쪽 모두 위험을 무릅쓴 채 같은 레이스를 벌이게 되고, 이는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치킨 게임’ 양상을 경고했다. 그는 “협력을 통한 상호 AI 개발 감속”을 촉구하기도 했다.

임박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AI 개발 규제와 관련한 모종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앞서 양국이 트럼프 2기 들어 첫 공식 AI 안전 대화를 9월 중순에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백악관은 당시에는 보도를 부인했으나. 양국간 모종의 물밑 논의는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NYT는 양국이 규제와 관련한 합의에 이르더라도 상대가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며 이를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만들어낸 ‘죄수의 딜레마’”로 표현했다. 특히 AI 규제는 핵군축과 달리 준수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도 지적했다.



유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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