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국에서 50년을 살았다. 반세기를 타국에서 살았지만 지금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조국은 멀리 있어도 마음에서는 떠난 적이 없다.
전쟁의 폐허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부모 세대의 희생과 국민의 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재외 동포들에게도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조국이다.
그래서 요즘 조국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겁다. 정치권의 갈등이 단순한 정쟁을 넘어 헌법과 법치, 삼권분립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까지 흔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입법부가 그렇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다수의 힘이 곧 무제한의 권력은 아니다. 다수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다. 그것이 헌법이다. 검찰과 사법부에 문제가 있다면 개혁해야 한다. 권한 남용이나 정치적 편향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과 제도를 바꾼다는 의심을 받는다면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 지금인가? 법과 제도의 변경이 특정 사건이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다면 그 필요성과 절차를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좋은 개혁도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법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의 여당에 유리한 법이 내일 야당이 되어도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오늘의 권력자가 내일 그 법의 대상이 되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것이 법치주의의 기준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금은 다수당이지만 다음 선거에선 소수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헌법과 법치의 원칙을 특정 정권의 이해관계에 맞춰서는 안 된다.
사법부도 성역은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묻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재판과 사법제도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제도다.
진정한 개혁은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같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원칙도 바뀌는 제도라면 권력의 도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주 한인들이 이 문제를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는 것도 대한민국이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자유와 번영을 이룬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가 흘린 땀과 희생을 기억한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헌법이 살아 있고, 법이 공정하게 적용되며, 정권이 선거를 통해 평화롭게 교체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이다.
해외에서 조국을 바라보는 동포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권력보다 헌법이 우선하고, 정치적 이해보다 법치가 앞서며, 누구도 권력 때문에 법 앞에서 특혜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나라다.
정치권은 명심해야 한다. 권력은 잠시지만 국가의 제도는 오래 남는다. 오늘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가 내일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느 정당의 나라도, 어느 정권의 나라도 아니다. 국민의 나라이고 헌법 위에 세워진 나라다.
필자는 지금도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조국을 생각하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권력보다 헌법이 강한 나라, 정치보다 법치가 강한 나라, 국가보다 국민의 자유가 존중받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은 다음 세대에도 온전히 남아야 한다. 그것이 반세기를 타국에서 살아온 필자가 조국에 바라는 최소한의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