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수집가 자택에 전시된 포켓몬 트레이딩 카드. [AFP=연합뉴스]
포켓몬 카드의 몸값이 크게 올랐다. 희소성과 추억이 무기다. 실물 카드를 대체불가능토큰(NFT)으로 만들어 사고파는 시장까지 커지고 있다.
14일 카드 가격 분석업체 카드래더가 집계한 포켓몬 지수는 3개월 전보다 39.88% 상승했다. 9591개 포켓몬 카드의 거래가를 추적해 매긴 지수다. 같은 기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종가 기준 1.36% 올랐다. 포켓몬 가격 상승률은 최근 반등한 비트코인(약 16%)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장기 성적은 더 극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카드래더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4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포켓몬 지수의 누적 상승률은 3821%였다. 같은 기간 S&P500 상승률(483%)의 약 8배에 달한다.
박경민 기자
어릴 적 취미였던 카드 수집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포켓몬·유희왕·원피스 등 관련 게임과 제품을 유통하는 아스모디의 2026회계연도 1분기(4~6월)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3.1% 증가했다. 지난 3월 끝난 직전 회계연도 전체 매출에서 TCG가 차지한 비중은 61%에 달했다. 희귀 카드 가격은 이미 유명 미술품 반열에 올라 있다. 미국 인플루언서 로건 폴이 2021년 527만5000달러(약 71억원)에 확보했던 ‘피카추 일러스트레이터’는 올해 2월 1649만2000달러(약 222억원)에 팔려 트레이딩 카드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 인플루언서 로건 폴이 2021년 확보한 PSA 10등급 ‘피카추 일러스트레이터’ 카드를 공개하고 있다. 기네스 세계기록 홈페이지 캡처
거래 방식도 진화하는 중이다. 블룸버그는 포켓몬 카드가 어린이용 취미에서 블록체인 내 ‘대체자산군’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컬렉터크립트와 코트야드 같은 업체는 실물 카드를 금고에 보관한 뒤 이에 1대1로 대응하는 NFT를 발행한다. 투자자는 NFT를 사고팔다가 원하면 토큰을 없애고 실물 카드를 찾아갈 수도 있다.
무작위로 카드를 뽑는 방식의 온라인 ‘가챠’도 확산하고 있다. 가챠는 일정 금액을 내면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일본의 캡슐 자판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블록웍스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온체인(블록체인) 가챠에 쓰인 금액은 2억9030만 달러(약 3904억원)였고, 같은 기간 카드 2차 거래액은 역대 최대인 6억9470만 달러(약 9343억원)를 찍었다. 일부 가챠에 포함된 카드는 가격이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에 달한다.
벤처캐피털 드래곤플라이 최고운영책임자(COO)이자 카드 수집가인 린지 린은 “기술로 번 돈이 투자 가능한 고변동성 자산을 좇고 있다”며 “포켓몬만큼 세계적으로 강한 향수 프리미엄을 가진 지식재산권(IP)은 드물다”고 말했다.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이달 배송 중인 고가 포켓몬 카드를 노린 절도가 잇따르자 일부 판매점은 온라인 판매를 중단했다. 일본에서는 위조·사기와 자금세탁 우려가 커지자 집권 자민당 의원들이 트레이딩 카드 시장 규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포켓몬 카드는 주식과 달리 배당이나 현금흐름이 없고 희소성, 보존 상태, 감정 등급에 따라 가격 편차도 크다. WSJ은 “모서리가 접히거나 표면에 작은 흠집 하나만 있어도 가격이 곤두박질칠 수 있고, 위조품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NFT 역시 팬데믹 당시 급등했다가 거래량과 가격이 고점의 일부 수준으로 떨어진 전례가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온체인 가챠 열풍을 두고 “수요가 지속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