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아일랜드 서부 섀넌공항에서 전용기에 올라 귀국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초인간적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업계의 경고가 터져 나온 직후 미·중 정상이 각기 ‘규제 해제형 속도전’과 ‘우군 결집형 규모전’에 방점을 찍으며 AI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 간 불신과 패권 경쟁으로 인해 AI 안전론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오는 2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AI 위험 관리와 관련한 접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 소유 둔베그 골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AI에서 이기는 쪽이 승리한다”며 “우리는 AI 분야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이고, 솔직히 나는 그 지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장치를 둘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부정적인 세력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발언은 전날 AI 기업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안전 조치가 기술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업계가 AI 모델 역량을 향상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 직후 나왔다. 아모데이의 우려에 샘 올트먼 오픈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등이 동의하며 세계적 파장을 불렀는데, 트럼프는 규제 해제와 인프라 투자를 중심에 둔 속도전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는 기술계와 정치권을 양분하고 있는 AI 개발 속도와 관련한 논쟁에서 ‘전속력 전진(full-speed-ahead)’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방점을 찍는 건 대중 견제다. 규제를 줄이고,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반도체 시설 건설을 서둘러 AI전쟁에서 중국보다 먼저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같은 날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8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중국 주도의 ‘브릭스 AI 오픈소스 지대’ 창설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브릭스 국가들에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응용 협력을 지원하고, AI 관련 연수·교육을 통해 개방형 AI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참여국들은 자연스럽게 중국 모델과 기술 규격에 익숙해지게 된다. 결국 속내는 저비용 오픈소스 모델을 브릭스에 보급해 궁극적으로 ‘중국형 AI 표준’을 선점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업계에서 일제히 브레이크를 밟자고 촉구했으나, 직후 미·중 정상은 가속과 확장을 택하며 사실상 이런 경고를 무시하는 기류다. 이와 관련, AI 규제가 미·중 간 패권 경쟁과 미국 내 당파 대립에 얽힐 경우 통제 불가능한 AI의 위험에 대한 대응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속도 조절론’을 주장한 아모데이도 CBS 인터뷰에서 중국 등의 국가가 AI 규제에 동참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든 딜레마”라고 인정했다.
앞서 지난 8일 “AI가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남기며 퇴사한 앤트로픽 전직 AI 연구원 제이컵 콕슨은 이날 NBC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우리와 같은 문제를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AI는 신중하게 개발돼야 한다는 같은 결론에 이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다면 양쪽 모두 위험을 무릅쓴 채 같은 레이스를 벌이게 되고, 이는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치킨게임’ 양상을 경고했다.
임박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AI 개발 규제와 관련한 모종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앞서 양국이 트럼프 2기 들어 첫 공식 AI 안전 대화(AI Safety Talk)를 9월 중순에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의 대화가 성사될 경우 ‘자율 AI 에이전트의 위협 방지’ ‘최첨단 AI 모델 규제’ ‘정보 공유 메커니즘’ 등의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다만 NYT는 양국이 규제에 합의하더라도 상대국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때문에 AI 개발 경쟁을 멈추긴 어려울 것이라며, 이를 “미·중 AI 패권 경쟁이 낳은 ‘죄수의 딜레마’”라고 표현했다. 특히 AI는 핵무기와 달리 규제 준수 여부를 검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도 지적했다.
AI 규제 문제는 미국 내 당파적 쟁점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민주당 비공개 모금행사에서 “AI는 민간의 손에서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며 당 차원의 대응을 주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그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할 경우 AI 정책에 관한 공개 논의의 틀을 마련하고, 2028년 대선주자들도 안전·경제 문제에 대한 명확한 대응책을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