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진단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청년 세대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외로움을 호소하면서도 동시에 자발적으로 관계를 단절하는 역설적 현상에 주목했다. 저자는 이 모순을 풀 열쇠를 ‘손절’이라는 단어에서 찾는다. 원래 주식 투자 용어인 손절매에서 비롯된 이 말은 손해가 커지기 전에 관계를 재빨리 정리한다는 뜻으로 확장돼 어느새 인간관계 전반을 설명하는 시대의 언어가 됐다.
이 책이 짚어내는 현상은 단순한 유행어 이상이다. 소셜미디어에는 ‘손절해야 할 사람의 유형’, ‘엮이면 안 되는 사람의 특징’ 같은 제목의 콘텐츠가 끊임없이 떠다닌다. 서점가에서는 나에게 유해한 관계에 선을 긋고 감정을 보호하라고 조언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생산성과 효율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마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 뒤 수익을 따지는 투자 행위로 변질됐다는 진단이다.
실제 통계도 이 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올해 발표된 한국·중국·일본·미국·스페인 등 5개국 청년 비교 조사에서 한국의 미혼 청년(18~39세) 가운데 55.4%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34세 이하 1인 근로 가구의 소득 대비 사교 모임 지출 비중이 코로나19 이전 2.2%에서 최근 1.3%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 부담 때문에 친구와의 만남조차 줄이는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 현상이 한국을 넘어 일본과 미국으로 번지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여기서 신앙 공동체가 마주한 질문이 생긴다. 교회는 본래 손익을 따지지 않는 관계의 훈련장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맞지 않으면 목장을 옮기고, 불편한 권면을 하는 지체를 피하며, 갈등이 생기면 대화하는 대신 조용히 발길을 끊는다. 이는 개인의 정신 건강을 지키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화해와 인내의 과정을 통째로 생략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성경이 말하는 관계의 언어는 손절의 언어와 정반대에 가깝다. “사랑은 오래 참고”,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구절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감내하라는 명령이다. 용서와 화해는 애초에 손익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념이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관계를 효율의 관점에서 최적화하라는 시대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민 교회 공동체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언어와 문화, 세대의 간극 속에서 이미 고립을 겪고 있는 이민 사회에 손절의 문화까지 스며든다면, 다음 세대는 어디에서도 깊은 관계를 훈련받지 못한 채 자랄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고 견디라”는 일방적인 훈계가 아니다. 실망하고 상처받더라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른 세대가 보여야 할 모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