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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에 뒤통수 맞았다…美에 840조 바친 사우디 최악 위기

중앙일보

2026.09.15 00:48 2026.09.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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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AP=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AP=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그 틈바구니에 낀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악의 안보 위기를 맞닥뜨렸다. 친이란 세력의 무력 도발이 사우디 본토와 주변 해역에서 계속되는 가운데 최대 안보 우방인 미국마저 군사 개입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사우디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야히야 사리 예멘 후티 반군 대변인은 X(옛 트위터)에 “수십 발의 탄도 미사일과 드론(무인기)을 투입해 사우디 카미스 무샤이트에 있는 킹 칼리드 공군기지에 대한 군사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전날 사우디가 예멘의 테이즈주, 알자우프주, 사다주 등을 겨냥해 58회 공습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면서다. 해당 기지는 사우디 정규군 전투기 중 대다수를 운용하는 기지로 후티 측은 지난 8일에도 이곳을 공격한 바 있다.

사우디 주도 연합군 대변인 투르키 알말리키는 이날 “후티 반군이 킹 칼리드 기지 외에도 카미스 무샤이트·아브하·타이프의 민간 시설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그 여파로 13명이 경·중상을 입고 주택 7채와 차량 2대가 파손됐다고 전했다.

같은 날 AP통신은 후티 반군이 홍해 남부 하니시 제도의 그레이터 하니시 섬과 레서 하니시 섬을 모두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하니시 제도는 바브엘만데브해협에서 북쪽으로 약 160㎞ 떨어진 홍해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호르무즈가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중동산 원유의 핵심 대체 수송로 역할을 하고 있다. 후티의 세력 확장으로 사우디의 원유 수송 대체 항로마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사우디 민방위국에 따르면 15일엔 사우디 메카를 비롯해 제다, 타이프 지역에 공격 위협 경보가 발령됐다. 이슬람 성지 메카에 경보가 울린 것은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처음이다. 제다는 우리 주재원과 교민 등 570여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다만 경보 발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위협이 사라졌다고 민방위국은 전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뿐 아니다. 지난달 31일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사우디 국영 해운사 바흐리 소속 초대형 유조선 ‘시드르’가 공격을 받아 필리핀인 선원 2명이 숨졌다. 사우디는 이란 측 공격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이라크에서 발사된 드론 여러 대가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와 홍해 연안 얀부항을 잇는 동서횡단 송유관을 공격해 가동이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마저 적극적인 군사 지원에 선을 그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 통화를 갖고 후티 반군에 대한 미군의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요청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대신 미국은 사우디에 최근 합동군 지휘부를 신설하고 군사고문 100여 명을 배치하는 등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미 CNN 방송이 전했다.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촬영된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미 공군기지 위성사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이 시작된 당일부터 이란의 탄도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아 주요 시설이 파괴됐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23일(현지시간) 촬영된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미 공군기지 위성사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이 시작된 당일부터 이란의 탄도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아 주요 시설이 파괴됐다. AP=연합뉴스

댄 샤피로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석좌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이미 장기화한 이란전쟁으로 해군 전력이 과도하게 투입되고 탄약 비축량도 줄어든 상황이라 새로운 전선을 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 감찰관실이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공격으로 중동 8개국의 미군 기지 시설 수백 곳이 파괴되고, F-15E와 MQ-9 리퍼 드론 등 미군 항공기 50대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SM-3·PAC-3 요격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등 주요 탄약 재고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11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 를 맞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 를 맞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빈 살만 왕세자는 수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밀착 행보를 보여왔다. 사우디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4년간 미국과의 무역·투자를 6000억달러(약 840조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같은 대미 투자·경제협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당시 1420억달러(약 199조원) 규모의 방산 패키지도 발표했다. 이에 앞서 사우디국부펀드는 지난 2024년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사모펀드에 20억 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NYT는 그럼에도 빈 살만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기대하던 안보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랫니 전 주사우디 미국대사는 “지금 사우디는 정말 좌절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그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짚었다. 이날 빈 살만 왕세자가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을 접견했다는 이란 국영방송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원 없이 후티 반군과 전면전에 나서기도 부담스럽다. 사우디는 2015년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국가들과 연합군을 꾸려 후티 반군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였지만, 10년 가까이 제압하지 못한 채 장기전의 수렁에 빠졌다. 오히려 이 기간 후티 반군은 이란을 등에 업고 미사일·드론 전력을 키워 사우디 본토까지 공격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바버라 리프 전 미 국무부 근동 담당 차관은 “사우디는 미국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거리를 두기보다, 별도의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외교적 출구전략도 불투명하다. 14일로 예정됐던 이란과 걸프국가들의 회담이 돌연 연기됐기 때문이다.

다급한 사우디는 홍해를 사이에 둔 이웃 나라 이집트에 SOS를 보냈다. 빈 살만 왕세자는 15일 이집트를 찾아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만나 홍해의 항행 안전 보장을 위해 공동 대응하기로 뜻을 모았다. 시시 대통령은 “사우디와 걸프 국가들의 안보는 곧 이집트 국가 안보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라며 “사우디의 주권은 물론 국제 수역에서의 항행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나 위협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다만 후티 반군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사우디도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는 정황이 포착됐다. 미 군사전문매체 TMZ의 이날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예멘에서는 사우디가 비밀리에 보유해 온 것으로 알려진 중국산 DF-15A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 미사일의 정확한 종류와 소유권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후티를 겨냥해 미사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만일 실제 사우디의 발사가 확인될 경우 극비 전략무기를 실전에 투입한 드문 사례가 된다.

알말리키 대변인은 이날 “사우디 왕국의 주권 수호를 위해 단호하게 행동할 것”이라며 “적대적이고 극단적인 접근법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작전 조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홍해 하니시섬 인근 항로에서 예멘 아덴에 기반을 둔 국제사회 인정 정부의 해군 함정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월 27일(현지시간) 홍해 하니시섬 인근 항로에서 예멘 아덴에 기반을 둔 국제사회 인정 정부의 해군 함정이 순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호르무즈해협 일대 긴장감은 이날도 이어졌다. 14일 이란 국영방송은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주 인근 해상에서 어선 2척이 드론 공격을 받아 어부 여러 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해협 남쪽에서 파나마 선적 초대형 유조선 ‘엘 가이아’가 기뢰와 충돌해 폭발·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오만 해군 함정이 엘 가이아 호에서 승무원 23명을 구조했지만 2명이 실종 상태다. 그러나 미 중부사령부는 기뢰 충돌 주장을 부인하고 해당 선박이 이란의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미 재무부는 러시아 2위 은행인 VTB은행에 신규 제재를 부과하며 대이란 압박을 강화했다. 이란에 지점을 개설하고 금융거래를 하는 등 이란의 서방 제재 회피를 지원한 혐의다.




하수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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