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서연은 19세인 2006년 도하 대회 이래 아시안게임에서만 금메달 6개를 땄다. 은퇴 6년 만에 레인에 돌아온 그는 39세에 미국여자프로볼링 신인왕을 차지했다. [사진 볼링인 매거진]
“한때 ‘레전드’라 불렸는데, 마흔 앞두고 신인상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미국여자프로볼링(PWBA) 투어 데뷔 시즌을 마친 류서연(39)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PWBA가 지난 9일 발표한 ‘2026시즌 신인왕(Rookie of the Year)’의 주인공이 됐다. ‘볼링의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PWBA는 세계 정상급 볼러들이 경쟁하는 무대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처음으로 도전장을 낸 류서연은 신인왕 수상과 함께 국제적 경쟁력을 인정 받은 셈이다.
최근 수원의 한 볼링장에서 만난 그는 “성적표로 말하자면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라면서 “미리 정한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신인왕)는 달성했지만 다른 하나(우승)는 놓쳤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류서연은 한국 여자 볼링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세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3인조)을 목에 걸었다. 2010 광저우 대회에선 4관왕(개인전, 5인조, 개인종합, 마스터스)에 올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도 금메달(6인조)을 추가한 그는 박태환(수영), 구본길(펜싱 이상 금 6개) 등과 더불어 한국 선수 대회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 보유자다. 2013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인 최초로 3관왕(개인전, 3인조, 5인조)에 오른 이력도 있다. 마법처럼 압도적인 경기력에 남다른 카리스마를 겸비해 ‘류마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힘겨워하다 지난 2019년 은퇴했다.
류서연이 6년 만에 은퇴를 번복하고 레인에 돌아온 건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는 “20대 때부터 ‘미국에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엔 1년 내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국가대표였고, 소속팀 스케줄도 있어 엄두를 못 냈다”면서 “은퇴 후 주부로 지내면서 ‘시간 여유가 있고 소속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도전할 타이밍’이라 판단해 부담 없이 볼을 다시 들었다”고 말했다.
류서연은 본격적인 복귀에 앞서 지난해 두 차례 국내 오픈 대회에 참가했는데,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모두 파이널에 진출했다. 남녀가 함께 경쟁하는 오픈 대회에서 힘과 체력이 월등한 남자볼러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경쟁력을 확인한 그는 올해 미국으로 향했다. 4~8월 사이에 열리는 PWBA 시즌은 12개의 대회를 평균 10일 간격으로 치르는 살인 일정이다.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 등 미국 내 서로 다른 지역을 순회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도 크다.
류서연은 “비행기 이동은 그나마 낫지만, 렌터카를 이용할 땐 혼자 10시간 넘게 운전한 적도 많다. 힘들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답답한 순간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훈련·숙박·교통 등 4000여 만원의 비용은 모두 스스로 부담했다. 개척자 정신과 실력으로 각종 어려움을 극복한 류서연은 랭킹 포인트 4만1920점을 획득해 신인상 레이스 맨 앞에 섰다. 2위 모건 크래머(2만2275점)와 2만 포인트 가까이 차이 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류서연은 “여러 후배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 또래 평범한 주부들에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지금이라도 가슴 속 꿈을 펼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면서 “내년엔 우승만 바라보겠다. 별명(마녀)처럼 볼링 마법을 부려보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