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가면 작은 텐트 하나가 며칠간은 내 집이 된다. 침낭을 펴고, 랜턴을 걸고, 소지품을 정리해 두면 그 텐트는 이제 단순한 천 쪼가리가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지낼지 머무는 기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게 되고, 그 질서는 곧 생활이 된다.
이민자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지금 그가 머무는 공간이 작은 원룸이나 아파트라 해도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그의 삶의 터전이 된다. 비자 한장으로 미국 체류를 허락 받았을지라도 그 안에 머물며 일을 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계절을 겪는다. 서류상의 신분과 무관하게, 그곳은 이미 ‘집’이 되어 의는 것이다.
국토안보부(DHS)는 지난 9월 11일, H-1B, L-1, O-1, E(E-1/E-2/E-3), TN 등 취업 기반 비이민 비자 소지자와 그 가족에게 주어지던 최대 60일의 유예기간(grace period)을 없애겠다는 규정 변경 방침을 연방관보에 공식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고용 관계가 끝나도 최대 60일, 혹은 I-94에 기재된 체류 허가 기간 중 더 짧은 쪽까지는 신분을 유지한 것으로 인정받아 새 고용주를 찾거나, 신분을 변경하거나, 짐을 정리해 출국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 규정이 사라지게 되면 퇴사는 곧 미국에 머물 권리의 즉각적인 박탈을 의미하게 된다.
숫자로만 보면 ‘60일에서 0일로’의 단순한 행정적 조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삶의 터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강제로 종료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미국 사회의 복지 혜택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정당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세금 납부하며, 지역 사회의 의무도 다해온 구성원들이다.
직장을 잃은 이들에게 새 스폰서를 알아보고, 아이의 학교와 거처를 정리하며 작별을 고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것이다. 숨 고를 겨를도 없이 텐트를 접어야 하는 이들에게 행정적 조치는 너무나 야속하게 작동한다.
다행히 이 안은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제안 단계이며, 2026년 11월 10일까지 의견 제출 기간이 열려 있다. 국토안보부는 이 유예기간이 애초 재량권으로 부여되던 것이었고, 이를 없애는 것이 신분과 그 신분의 근거가 된 활동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회복하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행정적 언어로는 ‘재량 규정의 정리’일 수 있지만, 대상자들에게는 자신이 쌓아온 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다.
한국의 행정법에는 흥미로운 법리가 하나 있다. 국가의 어떤 규제가 정당한지를 가늠할 때, 그 조치로 국가가 얻는 공익과 그로 인해 개인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 사이에 합당한 균형이 있는지를 따지는 비례의 원칙이다. 이는 미국 행정법상의 자의적 심사 기준이나 기대이익에 대한 고려와도 맥을 같이한다.
한국의 잣대를 이번 조치에 그대로 적용해 보면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생긴다. 유예기간 60일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행정적 이득이 그로 인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존엄의 침해에 견줄 만큼 무거운 것일까.
국토안보부가 내세우는 근거는 ‘재량 규정의 정리’, ‘신분과 활동의 직접적 연관성 회복’ 같은 몇 줄의 문구이다. 그런데 이 명분이 성실히 일하며 세금을 내고 살아온 사람의 삶을 하루 만에 접게 만드는 무게를 정말 감당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물어볼 만한 대목이다.
텐트를 접을 때도 순서가 있다. 폴대를 뽑고, 흙을 털고, 천을 개고, 짐을 챙겨야 한다. 그런데 그 순서를 지키려 해도 숨을 고를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이 지금 테이블 위에 올라온 제안의 실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서류 한장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삶을 정리하는 데도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