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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선거철 여론조사의 함정

Los Angeles

2026.09.1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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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길 사회부 기자

강한길 사회부 기자

선거철이 되면 숫자가 쏟아진다. 누구는 28%, 누구는 25%, 또 다른 후보는 18%. 며칠 뒤 다른 조사에서는 순위가 뒤집힌다. 언론은 ‘선두’, ‘추격’, ‘역전’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후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를 홍보한다. 유권자는 아직 투표하지 않았는데 선거는 이미 숫자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11월 선거를 앞둔 LA에서는 최근 이 숫자가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확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메디언 스트래티지스’라는 업체가 LA시장 결선투표에서 캐런 배스 시장이 니디아 라만 시의원을 약 12%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LA 유권자 560명을 조사했다며 오차범위까지 제시했다.
 
결과는 빠르게 퍼졌다. 언론이 보도했고 배스 시장 측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하지만 며칠 뒤 업체는 실제 여론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정보가 정치권에 어떻게 퍼지는지 알아보기 위한 ‘사회실험’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여론조사는 가짜였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낸 반응까지 가짜였던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는 선거에서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수백만 명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 없으니 표본을 통해 전체 유권자의 생각을 추정한다. 제대로 설계된 여론조사는 민심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미래의 선거 결과가 아니라 조사 당시 유권자의 선택이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민심을 정확히 측정하기도 어려워졌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는 사람은 줄고 온라인 조사는 표본 구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온라인 설문이 보편화하면서 적은 비용으로도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으로 그럴듯한 분석과 자료를 만들어 유통하는 문턱도 낮아졌다.
 
부동층과 오차범위도 변수다.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가 많다면 몇%포인트 차이로 승패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후보 간 격차가 오차범위 안이라면 누가 앞선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기사 제목에서는 복잡한 조사 방식과 오차범위가 사라지고 ‘1위’와 ‘2위’만 남기 쉽다.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가 민심을 측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두라는 보도가 반복되면 후원금과 언론의 관심이 몰릴 수 있다. 반대로 낮은 지지율이 계속 보도되는 후보는 정책을 평가받기도 전에 ‘당선 가능성이 없는 후보’로 인식될 수 있다. 우세한 후보에게 지지가 몰리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다. 결국 민심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숫자가 다시 민심을 움직이는 셈이다.
 
그렇다고 여론조사를 믿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1위가 누구인지 보기 전에 누가 조사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표본과 조사 방식, 오차범위와 부동층도 살펴봐야 한다. 언론 역시 조사기관과 조사 방법을 검증할 책임이 있다.
 
최근 LA의 가짜 여론조사 사건은 그 필요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신생 업체가 만든 숫자 하나가 언론을 거쳐 정치권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업체는 이를 ‘사회실험’이라고 불렀지만 언론과 정치권이 실제로 반응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숫자의 힘은 더 커진다. 몇%포인트의 차이가 후보의 정책보다 큰 뉴스가 되고, ‘누가 이길 것인가’가 ‘누가 더 나은 선택인가’를 밀어내기도 한다.
 
가장 정확한 여론조사는 결국 선거일의 투표 결과다. 그전까지 발표되는 숫자는 민심의 사진 한 장일 뿐이다. 사진은 그 순간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다음 장면까지 결정하지 못한다.
 
선거철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틀린 여론조사만이 아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선거를 이미 결정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강한길 /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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