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시작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있다. 끝까지 가는 일이다.
[이종현 대한민국엔터테인먼트협회 수석 부회장, 플래직(FLASIC) 고문]
특히 예술에서는 그렇다. 한 번의 공연을 성공시키는 것도 쉽지 않지만, 10년 뒤의 완성을 바라보며 하나의 프로젝트를 지속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예술적 역량만으로 되지 않는다. 사람을 모으고, 무대를 만들고, 비용을 마련하고, 관객을 만나고, 때로는 실패와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견디면서도 처음의 약속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휘자 진솔과 ‘말러리안’이 걸어온 지난 10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솔은 20대에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지휘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주변에서는 무모하다고 했다. 그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말러의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에도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다. 작품에 따라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독창자까지 필요하고 막대한 제작비와 연습시간이 요구된다. 실제로 오는 10월 9일 마지막 무대가 되는 교향곡 제2번 ‘부활’ 역시 대규모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작품이다.
더구나 그 도전을 시작한 주체가 막강한 재정과 조직을 가진 국공립 악단이 아니었다. 2016년 진솔을 중심으로 말러의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음악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말러리안은 국공립 악단도, 상설 조직도 아닌 음악 공동체였다. 이들이 내건 목표는 대담했다. 민간단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2017년 말러 교향곡 10번 1악장과 5번을 시작으로 1번, 6번, 9번, 3번, 7번, 4번, 8번을 거쳐 이제 마지막 2번 ‘부활’을 남겨놓았다. 코로나19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단절도 있었지만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곡 제8번 ‘천인’ 공연만 해도 국립합창단·부천시립합창단·위너오페라합창단·김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8명의 독창자가 함께했다. 말러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는 데 얼마나 큰 인적·예술적 자원이 필요한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필자는 진솔의 말러 전곡 완주에서 ‘최연소’나 ‘최초’라는 기록만큼이나 10년이라는 시간을 주목하고 싶다. 기록은 결과를 말하지만 시간은 그 사람이 무엇을 견뎌냈는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는 흥미롭게도 세 개의 ‘10’이 겹친다. 말러리안 창단 10주년, 열 번째 정규 시리즈, 그리고 10년에 걸친 말러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의 완결이다. 여기에 진솔은 이번 프로젝트를 마치며 전 세계 최연소 여성 지휘자의 말러 교향곡 전곡 완주라는 기록에도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말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진솔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독일 만하임국립음대를 거쳐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작업했고 현대음악에서도 활동해왔다. 베를리너 심포니커를 비롯한 해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프라하 드보르자크홀 등에서도 무대에 섰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자 아르티제·말러리안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지휘봉이 전통적인 클래식의 영역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임 · 서브컬처 음악 콘텐츠 플랫폼 ‘플래직’을 이끌며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 공연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문명’과 ‘라그나로크’ 등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 콘텐츠로 확장해 해외 무대까지 연결했다. 이러한 고전과 현대, 클래식과 게임음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는 2024년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그는 고전·현대음악을 넘나드는 혁신적인 지휘자로 평가됐다.
이 대목에서 진솔이라는 지휘자를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오케스트라에 초청받아 악보를 해석하는 데 머무르는 지휘자가 아니다.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연주할 조직을 만들고, 기존 공연장에서 만나기 어려운 음악이 있다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며, 자신이 생각하는 클래식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해왔다.
지휘자가 음악을 지휘하는 사람이라면, 진솔은 때때로 ‘판’을 지휘해온 사람에 가깝다. 이는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과 자신의 예술이 지속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다른 능력이다. 이제 예술가에게는 창작과 연주뿐 아니라 기획하고 연결하고 새로운 관객을 발견하는 역량도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말러리안의 10년은 한 지휘자의 개인적 성공담에 머물지 않는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도 누군가 포기하지 않고 사람을 모으고, 한 해 한 해 결과를 축적한다면 결국 하나의 문화적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예술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많은 도전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의 마지막 작품이 하필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이라는 사실은 묘한 울림을 준다. 말러리안은 마지막 공연에 ‘Ewiger Gesang’, 즉 ‘영원한 노래’라는 부제를 붙였다. 프로젝트 자체는 끝나지만 지난 10년 동안 함께 만든 음악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또 다른 세대의 음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어쩌면 이것이 예술이 살아남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남긴 도전과 작품과 기억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것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또 다른 시작을 만든다.
그래서 2026년 10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질 말러의 ‘부활’은 단순히 한 교향곡의 마지막 음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 실제 공연에는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와 원주시립합창단·서울모테트합창단·위너오페라합창단 등이 함께하며, 공연 실황은 음반으로도 남길 예정이다.
10년 전 한 젊은 지휘자가 품었던 조금은 무모했던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무모한 꿈을 꾸는 것은 젊음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꿈을 10년 동안 지켜내는 것은 한 사람의 태도이자 철학이다.
진솔과 말러리안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기록은 어쩌면 ‘최초’도 ‘최연소’도 아닐지 모른다. 시작한 사람이 끝까지 갔다는 것.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혼자 걷는 대신 수많은 음악가와 관객을 자신의 꿈에 동행시켰다는 것.
그것이 말러의 ‘부활’이 끝난 뒤에도 오래 기억해야 할 진솔과 말러리안의 진짜 성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