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비슷한 방식이다. 누군가의 잘못이 알려진다. 빌런의 등장에 SNS가 뒤집어진다. 잘못에 합당한 수준의 비판을 넘어, 확인되지 않은 ‘억까’들까지 ‘논란’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유튜브 레카들, 온라인 매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과거사가 줄줄이 파묘된다. 대중은 연예인·유명인을 단죄하면서 정의를 실현한다는 효능감, 도덕적 우월감을 만끽한다. 누군가 걸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분풀이성 마녀사냥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다. 중심에는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혐오’를 파는 유튜브 비즈니스가 있다.
반듯한 장애인 유튜버 이미지
태도 오만 논란에 한순간 나락
유튜브 혐오 비즈니스도 가세
장애인 멸시로 번지지 말아야
유튜버 박위가 공개한 KTX 하차 과정에서 겪은 휠체어 전복사고 현장 영상. [사진 박위 유튜브 ‘위라클’ 캡처]
# 박위 사태 역풍의 의미 이번에는 지체장애인 유명 유튜버 박위다. 애초 그의 처신이 부적절했던 것은 맞다. 휠체어를 타고 KTX에서 내리다 자신을 돕던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걸려 넘어지자 CCTV를 공개했다. 처음엔 부주의한 사회복무요원과 KTX 측에 비판이 쏠렸지만, 요원이 수차례 사과를 했음에도 식별이 가능한 CCTV까지 공개한 것은 과했다는 여론의 역풍이 불었다. 휠체어 상하차시 이동식 경사판이 바닥에서 뜨지 않도록 발로 눌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무엇보다 격분해 항의하는 박위와 마치 백화점 VIP 고객에게 혼나는 듯 위축된 사회복무요원·KTX 관계자들의 모습이 대비됐다. 장애인 이동의 안정성 문제에서 영향력 큰 100만 유튜버의 특권의식과 인성 논란으로 논점이 바뀌었다.
박위는 깔끔한 외모에 구김살 없고 건강한 이미지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며 대중의 응원을 받아온 100만 유튜버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추락사고로 하루아침에 전신 마비가 됐지만 끝내 이겨낸 의지와 희망의 아이콘이다. 재활 과정을 담으며 시작한 ‘위라클’ 채널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도 앞장섰다. 특히 걸그룹 시크릿 출신인 아내 송지은과의 러브 스토리가 신선한 감동을 줬다. 유명 드라마 PD인 아버지 인맥 덕분인지, 연예인들과의 친분도 화제였다.
논란이 커지자 박위는 “제 전달 방식이 미숙했고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문을 발표하고 서울시 홍보대사 등을 내려놓았지만 사태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100만 구독자는 90만대로 내려앉았고, 예정된 특강은 줄줄이 취소됐다. 그의 태도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근 한 달째 과거사 파묘가 이어지고 있다. 학폭 가해자로 소년원에 다녀왔다는 주장은 학교 동창들이 나서서 반박하는 바람에 일단락됐지만, 그간 장애인이 겪는 일상의 어려움(특히 이동권 문제)을 고발하는 유튜브 콘텐트들이 연출·과장이었다든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등 각종 ‘논란’과 ‘의혹’이 잇따랐다. 과거 영상을 나노 단위로 분석해 새롭게 의미부여하며 꼬투리를 잡거나, 해외 봉사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수발을 들어야 해서 민폐였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박위가 별다른 반응이나 해명을 내놓지 않으면서 진위를 알 수 없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도 넘는 인신공격의 수위만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사과문. [사진 박위 유튜브 ‘위라클’ 캡처]
#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와 도덕성 더 중요한 부분은 박위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저격하는 갑질을 했으니, 앞으로 도움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반응이다. 박위가 “300번 정도 KTX를 탔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 데 대해 “300번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건데 그걸 고마워하는 게 먼저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 한 유튜버는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부당거래’의 명대사를 인용하면서 계속 배려나 호의를 베풀다 보면 이를 당연히 여기더라고 꼬집었다. 장애인이 도움을 받았으면 마땅히 감사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에게 문제 제기하거나 화를 내는 건 자격미달이라는 얘기다.
물론 박위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끝까지 감사를 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타인의 실수 뒤에 숨은 선의의 가치를 가벼이 여긴 부분은 책망받을 만하고, 100만 유튜버라는 권력에 취해 겸손이라는 덕목을 잊은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애초 그가 말하려 했던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권 문제는, 비장애인의 이동권만큼이나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이지, 인성이나 자격에 따라 베풀어지는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비장애인이 선하든 악하든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장애인도 착한지 나쁜지 상관없이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사람의 권리란 그의 도덕성과 무관한 것이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보고서도 “공공교통에서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승하차 지원과 접근성은 누군가의 특별한 친절이나 선행이 아니라 장애인이 다른 시민과 동등하게 공공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부 악플러들은 박위가 음주 상태에서 추락해 장애를 입은 과정을 문제 삼으며 그의 잘못을 따져 묻기도 했다. 자기 잘못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장애의 순수성을 감별하고, 자격을 판정하려는 기이하고 오만한 태도다.
장애인·소수자들은 배려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특혜를 요구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장애인·소수자에 대한 오래되고 뿌리 깊은 편견이자 혐오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과 일반인의 이동권이 충돌했던 전장연의 시위 방식에 대한 피로감이 쌓인 탓일까. 장애인 이동권 문제로 촉발된 박위 사태가 개인을 넘어 장애 일반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쪽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