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구(62)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인 충남 부여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고향에서 농사꾼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그의 운명이 바뀐 건 형님 덕분이었다. 형님은 지인의 지인까지 총동원해 도시에 동생이 일할 자리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경기도 부천시 보건소의 고용직 공무원이었다.
" 어제까지 시골에서 농사짓던 촌놈이 갑자기 도시에 올라와 낯선 조직에 들어오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공무원이 된 줄도 몰랐어요. 하는 일이라 봤자 선배들 잔심부름이 전부인 사무보조인데 어찌나 눈치가 보이고 어렵던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
40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 한 뒤 감리원을 꿈꾸며 인생 2막 준비를 해왔다는 장석구씨. 사진 김부규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어렵게 취직시켜준 형님 얼굴에 먹칠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선배들의 도움으로 자격증을 따 기능직·일반직으로 직렬을 전환하며 경력을 이어갔다. 그렇게 40년을 공직에 몸담는 행운을 누렸다.
퇴직을 앞두고는 인생 2막 준비도 철저히 했다. 퇴직 선배들이 토목이나 건축의 감리 분야로 재취업하는 모습을 보며 장씨도 전기기능사·용접산업기사 등 자격증을 따고, 감리원 수첩(전력기술인 또는 건축 감리원 등 특정 분야의 기술 역량과 경력을 증명하는 문서)을 중급·고급까지 따뒀다. 지인들도 장씨의 퇴직 준비를 보며 “그렇게만 하면 걱정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장씨는 퇴직 후 철저하게 준비했던 감리 분야로 진출하지 않았다.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취득한 자격증들은 전부 장롱행이 됐다.
그는 현재 하루 6~7시간만 일하고 최대 월 3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자유를 누린다.
“지금이 제 인생 최고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가 빈틈없이 준비했던 감리 분야를 포기하고 선택한 직업이 궁금하신가? ‘직업 만족도 최상’이라는 이 직업에 대해 탈탈 털었다.
감리원 대신 택한 인생 2막 꿈의 직업
Q : 공무원 퇴직 후 감리원을 목표로 여러 자격증을 미리 취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많은 선배 공무원이 감리 현장에서 제2의 커리어를 쌓고 있더라고요. 저 역시 그분들의 길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에 용접산업기사·전기기능사·가스안전관리자 등 다양한 자격증을 미리 따뒀어요. 감리수첩도 고급·중급까지 갖춰뒀고요.
하지만 그런데 퇴직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자꾸 다른 생각이 들더라고요. 40년 동안 정해진 출퇴근 시간, 상하 관계에서 온갖 눈치 보던 일, 온갖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린 시간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퇴직한 뒤에 또 다른 조직에 들어가 새로 일을 배우면서 사람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뭔가 자유로운 일이 없는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장석구씨가 오랜 기간 준비한 감리원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부규
Q : 자유로우면서도 안정된 수익이 나오는 일자리가 필요했을 텐데, 찾으셨나요?
찾았습니다. 퇴직 5년 전, 전북 무주에 업무차 방문했다가 우연히 지역 공무원들의 대화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