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둔 2007년 11월 7일 아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그날 오후 대선 출마 선언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급히 그가 살던 서울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로 달려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기가 막혔다. 두 번이나 보수 정당의 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분이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당 공식 후보의 등에 칼을 꽂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로 인한 보수 표 분산 때문에 패배한 뼈아픈 역사의 당사자가 말이다.
이 전 총재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1층 경비실에서 자필 편지를 쓴 뒤 현관문 틈새로 밀어 넣었다.
" 존경하는 이회창 총재님, 며칠째 만나 뵙고 말씀드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못 만나게 돼 몇 자 적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여겨지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통화라도 하고 싶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7일 새벽 이명박. "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7년 11월 7일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날 오후 이 전 총재는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가 보수 진영의 분열로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대통합민주신당은 갈수록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그 어처구니없던 흑색선전, 아내가 일갈했다
2007년 12월 6일 밤, 제17대 대선 후보들의 첫 TV 합동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검찰의 무혐의 처분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는 흑색선전의 먹구름이 비로소 걷힌 만큼 국가 경영 비전과 경제 살리기를 놓고 후보 간 품격 있는 정책 대결이 펼쳐지길 기대했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생방송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작심한 듯 포문을 열었다.
" 솔직히 이런 후보와 나란히 앉아서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합니다. 검찰이 이명박 후보를 세탁해 주려고 (무혐의 결론을 발표)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후보가 부패한 후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어떤 국민이 믿겠습니까! "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선거 벽보.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여권의 대선 후보가, 노무현 정부 수사기관의 공식 수사 결과를 부정한 거다. 토론은 정치, 외교·안보 등 주제별로 나뉘어 진행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검찰과 나를 공격했다.
1시간이 흐른 뒤에도 토론은 여전히 ‘BBK’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
" 정 후보께서는 조금 전 대한민국 검찰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검찰은 도대체 누가 임명했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임명했습니다. "
나는 이어 거듭되는 정치 공세에 쐐기를 박았다.
" 혹시 ‘북조선 검찰’이라도 와서 조사해야 믿겠습니까? "
정 후보 측 인사들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정 후보 역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선거에서 뒤지는 후보 입장에서 어느 정도의 공세를 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도를 넘는 수준으로 토론 내내 공격만 퍼붓는 건 하지하(下之下)책이었다.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않고 무조건 지지율 1위 후보를 흠집 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태도를 국민이 좋게 봤을 리 만무하다.
그 같은 네거티브 공세와 공작 정치는 선거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심지어 상대 진영은 BBK 의혹에 등장한 한 여성과 나를 결부시키면서 “유전자 감식이 필요 없는, 눈 찢어진 아이가 있다”며 나에게 혼외 자식이 있다는 뉘앙스의 흑색선전을 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영부인이 되기 직전인 2007년의 모습이다. 중앙포토
실로 어처구니없는 그 흑색선전을 가장 통렬하게 맞받아친 게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그 루머가 언급되자 캠프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모들이 그걸 듣고 요즘 말로 ‘빵’ 터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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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눈 찢어진 혼외자 있다” 루머…김윤옥 이 말에 빵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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