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한번 알게 되면 다시는 멈출 수 없다. 진실을 한번 알게 되면 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기필코 찾게 되고야 만다.”
16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DC 레이번 하원회관 외교위원회 회의실. 지난 2004년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북한 인권 활동가 데보라 최가 청문회 증인석에 앉아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이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 자격으로 주재한 ‘생명을 협상 지렛대로 삼지 말라: 중국과 북한 탄압의 긴 팔’이라는 제목의 청문회였다. 데보라는 2006년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에 입국한 초기 탈북 난민 가운데 한 명이다.
북한 인권 활동가 데보라 최(왼쪽 둘째)가 1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레이번 하원회관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중국의 탈북 여성 인신매매와 강제북송 실태를 알리기 위해 미 의회 증언대에 섰다. 왼쪽부터 피터 매티스 제임스타운재단 회장, 최씨, 실비아 진,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화면 속 인물은 청문회를 주재한 영 김 하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 워싱턴=유지혜 특파원
“다섯 살 무렵 책에 있던 김일성의 초상화에 실수로 낙서를 하고 책장을 찢고 말았다. 아버지는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나를 때리며 ‘우리 가족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몇 년 뒤에는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강제로 공개 처형장에 끌려갔다. 사람들이 나무 기둥에 묶여 있었다. 총성이 울릴 때 눈을 감았지만, 손가락 틈새로 그들의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봤다. 누군가 ‘저 사람들 가족은 이 장면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맨 앞줄에 세워졌다’고 말해줬다. 그때 결심했다. 나라가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그랬던 그가 탈북을 결심한 건 큰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2004년 친구들과 몰래 숨어서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된 것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여행하고, 사랑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지내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우리를 현혹하려는 거짓 선전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고,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저 세계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데보라는 진실의 세계를 향해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신매매범이 그를 붙잡아 베이징으로 데려갔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중국인 남성에게 팔려가 성폭행당하며 1년 반 가까이 갇혀 살아야 했다.
수많은 탈북 여성이 겪는 악몽. 인신매매범은 북송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알기에 더 잔인하게 학대했다. 데보라는 함께 두만강을 건넜던 다른 여성을 기억했다.
“아이 엄마였던 그녀는 굶주림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인신매매범들은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며 북한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 팔아도 좋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지만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날 밤 인신매매범들은 그녀를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그녀는 반항이라도 하다 북송될까 두려워 신음 한 마디 내지 못한 채 짓밟혀야 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내가 처녀라서 더 비싸게 팔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중국과 북한의 국내외 인권탄압 실태에 대한 증언과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강제북송과 인신매매, 해외 반체제 인사 탄압, 자의적 구금 문제 등이 다뤄졌다.
또다른 증인 실비아 진은 남편 민 진의 중국 구금 상황을 증언했다. 미얀마 출신 미국 시민이자 연구자인 민 진은 지난 6월 중국 윈난성에서 열리는 학술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쿤밍에 입국했다가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됐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그를 중국에 의해 ‘부당하게 구금된 미국인’(wrongfully detained)으로 공식 지정했다.
실비아는 “남편의 중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불안해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하지만 공항 도착 뒤 여섯 시간이 지나도록 남편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다음날 중국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의 우려는 끔찍한 현실이 됐다”고 돌아봤다. “수화기 너머의 인물은 민 진이 윈난성 국가안전청(MSS)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만 하고 끊었다”면서다.
중국이 남편을 구금한 이유는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였다. 실비아는 “남편은 독립 연구기관에서 일하며, 남편의 학술 연구는 정치 공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남편이 구금 초기 매일 4~6시간씩 조사를 받았고,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좁은 독방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금된 지 100일이 넘도록 남편은 변호인도 만나지 못하고 있고, 나는 남편이 어디 억류돼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16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및 중국의 강제 구금 실태와 관련한 청문회를 주재한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 유튜브 캡처
영 김 의원은 이처럼 중국이 미국 시민권자를 자의적으로 구금하는 것은 미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우리는 중국의 침탈 행위가 미 국경 내부까지 뻗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제 우리는 더 거대한 위험, 해외뿐 아니라 바로 이 곳 미국 본토에서 미국 시민과 영주권자를 겨냥해 노골화되고 있는 중국 공산당(CCP)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이 억류 외국인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온 것과 관련해서도 “만약 여러분이 중국을 여행한다면 베이징 당국은 외교 협상의 지렛대로 삼기 위해 여러분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 만약 여러분이 중국 정권의 박해를 받는 소수민족 출신의 미국인이라면, 공산당의 ‘초국가적 탄압(transnational repression)’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각심을 촉구했다.
특히 민 진 구금이 미·중 정상회담을 몇 개월 앞두고 이뤄진 점을 주목하며 “양국 정상이 지난번 만났을 때 중국 시온교회의 에즈라 진밍리 목사가 회담 직후 공산당에 의해 석방됐다. 민 진 또한 조속히 자유를 되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아미 베라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캘리포니아)도 “인권은 권위주의적 강압에 맞서 우리의 취약성을 방어하는 핵심 보루이며, 국가 안보 이익과도 분리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인권 유린에 맞서기 위해서는 실태 폭로가 선행되어야 하며, 자유로운 정보의 유입이야말로 그 싸움의 생명줄”이라며 대북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데보라와 실비아 외에도 피터 매티스 제임스타운재단 회장,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부문 회장 겸 한국석좌가 참석했다.
차 회장은 “중국의 난민 강제 송환을 넘어, 초국가적 탄압을 위한 양국의 결탁은 공급망 내부 깊숙이 배어 있다. CSIS는 북한의 강제 노동과 국제 공급망 간의 은폐된 연결고리를 조사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 국가 기관과 북한 내 경제특구에서 운영되는 중국 기업 간의 체계적인 분업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매티스 회장은 “중국 공산당의 미국인 부당 억류와 초국가적 탄압은 주민을 국가 자원으로 취급하는 체제 특성에서 비롯된다”며 중국이 체감할 수 있는 국유기업 정밀 타격과 지도부 은닉 자산 공개 등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