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다. 그러나 요즘 외국인에게 “미국에서 살고 싶은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패권국은 단순히 강한 나라를 뜻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질서를 만들고, 그 질서를 국제 표준으로 정착시키며, 다른 나라들이 그 질서를 강요가 아닌 필요와 신뢰에 의해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이 요구된다.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학자 할 브랜즈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미국이 ‘노쇠하고 위태로운 패권국의 시대(aging, endangered Hegemon Era)’로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압도적인 자산을 활용하는 능력이 감퇴했다는 것이다. 안에서는 정치 분열과 재정 부담이, 밖으로는 중국의 부상과 동맹국들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의 매력과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규칙 제정 능력도 감퇴시켰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세계 질서 수호 의지와 능력, 그리고 자국을 지켜줄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체감되는 부문은 이민이다. 미국은 세계 이민자들이 꿈꾸던 종착지였다. 그러나, 현주소는 ‘차단’에 가깝다. 지난달 연방 법원이 75개국에 대한 이민비자 발급의 전면 중지를 무효화 했지만, 창구는 갈수록 좁아진다. 난민 수용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백인 중심으로 바뀌고, 지난 8월 한 달에만 5만 명 이상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됐다. 유학생들은 학업 기간의 체류 대신, 이달 15일부터는 최대 4년에 출국 준비를 위한 30일을 더한 기간만 체류가 허용된다. 졸업 후 실습 취업(OPT)에는 10만 달러의 수수료가 검토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밀히 통합된 경제권이자 오랜 동맹이다. 그런데 미국은 캐나다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무역 압박을 가한다. 지난 7월, 트럼프 1기 때 맺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를 연례 검토 방식으로 바꿨고, 1930년 제정된 관세법을 꺼내 캐나다 일부 상품에 5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요구가 지나치게 많다고 반발했고, 협상은 난관에 봉착했다. 동맹들은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기 시작했다.
패권 유지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AI 투자로 미국 경제는 활기차지만, 연방정부 부채는 40조 달러를 넘었다. 국채 가격은 내리고 채권 수익률(이자율)은 오른다. 미국 국채는 무조건 안전 자산으로 여기던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투자자들은 재정 위험과 인플레이션, 지정학적 위험을 고려해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한다. 미국 국채 문제는 전 세계 금융시장으로 퍼졌다.
군사력도 무한하지 않다. 이란전쟁은 승패가 모호한 채 6개월을 넘겼다. 전쟁은 유가와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고, 지정학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특히 미국의 요격미사일 소진은 다른 지역에서의 군사 지원 능력에 부담을 주고 있다. 패권국의 힘은 단순히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순간 미국에서 무기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동맹국에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독보적인 미국 중심의 시대에서 실용을 좇는 다극 체제로 이동하는 변화가 시작됐다. 중국은 미국의 주도권 견제를 위한 공감대 형성과 세계 무대에서 역할 확대를 위한 지지 확보에 열심이다. 그러나 세계는 중국 쪽으로 전환하기보다 미국에의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나라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환기에 미국은 힘보다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믿고 자발적으로 와서 미국인이 되었다. 이민자와 동맹국이 미국을 믿고 선택했을 때 미국은 가장 강했다. 미국의 힘은 세계를 두렵게 하는 힘이 아니라 미국을 선택하게 만드는 매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