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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참교육’ 문제아 가두니 평온해진 교실

Los Angeles

2026.09.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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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애플스 (Bad Apples)
시얼샤 로넌, 납치 저지른 교사로 변신
문제 학생 없애자 성적·평판 모두 상승
불편한 통쾌함 속 공교육 현실 꼬집어
문제 학생을 힘으로 눌러 교실 질서를 되찾는다는 얼개만 보면 이 영화를 ‘영국판 참교육’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를 두고 학부모와 학교가 날마다 충돌한다. [Republic Pictures]

문제 학생을 힘으로 눌러 교실 질서를 되찾는다는 얼개만 보면 이 영화를 ‘영국판 참교육’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를 두고 학부모와 학교가 날마다 충돌한다. [Republic Pictures]

‘배드 애플스’는 ‘레이디 버드(Lady Bird, 2017)’,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같은 작품들에서 단정하고 사려 깊은 이미지를 쌓아오며 20대에 이미 네 차례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오른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단적인 영화다. 다정한 얼굴을 지닌 여교사가 저지르는 범죄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도발적이다. 스웨덴 감독 요나탄 에츨레르의 첫 영어권 연출작.
 
‘배드 애플스’는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같은 작품에서 단정하고 사려 깊은 이미지를 쌓아오며 20대에 이미 네 차례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오른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단적인 영화다. [Republic Pictures]

‘배드 애플스’는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 같은 작품에서 단정하고 사려 깊은 이미지를 쌓아오며 20대에 이미 네 차례 오스카 여우주연상에 오른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단적인 영화다. [Republic Pictures]

영화는 로넌을 상냥한 성격의 초등학교 교사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상냥함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순하게 시작한다. 교사 마리아 스펜서는 다루기 힘든 반을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니라는 열 살 아이가 문제다. 대니는 물건을 던지고 친구를 다치게 한다. 학교도, 부모도, 시스템도 대니를 감당하지 못한다. 마리아는 매일 아침 지친 얼굴로 교실 문을 연다.
 
소심한 그녀는 늘 위축된 심리로 살아간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없다. 그런 마리아에게 어느 날 사고가 터진다. 대니가 반 친구에게 크게 다칠 만한 상처를 입힌다. 마리아는 그 순간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아이를 자기 집 지하실에 가둔다. 개 목줄까지 채운다. 마리아는 그녀의 이 충동적인 행동을 되돌리지 않는다.
 
대니가 사라지자 마을은 발칵 뒤집힌다. 경찰이 나서고 주민들이 수색대를 꾸린다. 실종 전단이 마을 곳곳에 붙는다. 반면 교실은 거짓말처럼 평온해진다. 아이들은 얌전해지고, 성적이 오르며 마리아의 평판도 날로 치솟는다.
 
그녀는 밤마다 지하실로 내려가 몰래 대니에게 글을 가르친다. 두 사람 사이에 죄책감과 성취감이 뒤섞인 묘한 유대감이 싹튼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쩌면 대니가 없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공유된다.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지만 그들의 얼굴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지하실 생활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마리아는 끼니를 챙기고, 책을 가져다주고,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대니는 처음엔 반항하지만 서서히 마음을 연다. 한편 교실에는 또 다른 균열이 자란다. 폴린이라는 아이가 낌새를 알아차리면서 마리아와 대니, 폴린 세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영화는 아이 하나를 희생시켜 다수가 이득을 보는 공리주의를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한다. [Republic Pictures]

영화는 아이 하나를 희생시켜 다수가 이득을 보는 공리주의를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한다. [Republic Pictures]

아이 하나를 희생시켜 다수가 이득을 보는 상황. 에츨레르 감독은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냉소적 시선을 영국 시골 마을의 정서에 그대로 이식하며 공리주의를 코미디의 재료로 사용한다.
 
사과 과수원 이미지가 영화 내내 반복된다. 썩은 사과 한 알이 상자 전체를 망친다는 오래된 비유를 정면으로 끌어온다. 음악도 이 냉소적 장면에 무게를 얹는다. 다소 과장된 웅장함으로 영화의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한다. 관객에게 힌트를 반복해서 던지는 사과의 상징 장면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은유가 아니라 설명처럼 느껴진다. 서늘한 결말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이처럼 완벽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배드 애플스’는 뭔가를 계속 곱씹게 만드는 불편함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다.
 
영화를 끌고 가는 건 당연히 로넌의 연기다. 로넌은 이번에도 안전함에서 벗어난 예상 밖의 역할을 선택했다. 그녀는 마리아를 소심하고 위축된 캐릭터로 그리다가, 범죄 행위를 통해 오히려 자신감을 얻는 인물로 옮겨간다. 이 변화는 불편하면서도 통쾌하다. 로넌 특유의 선한 인상이 여기서는 함정으로 작동한다. 관객이 그녀를 믿고 싶어 할수록 불편함은 커진다.
 
아역 배우들의 존재감이 크다. 성인 배우들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극을 이끈다. 특히 대니 역의 신인 배우 에디 월러는 한순간에 연약함과 폭력성을 오간다. 계산된 연기라기보다 본능적인 연기에 가깝다. 이 나이대 배우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연기폭이다. 자코브 앤더슨과 레이키 아욜라 등 주변 어른 캐릭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배드 애플스’는 토론토영화제(TIFF)에서 처음 공개됐고,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신인감독 부문의 개막작으로도 상영됐다. 두 영화제 모두에서 반응이 대체로 좋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켄 로치(Ken Loach)식 사회극을 연상시키지만, 결이 다르다. ‘배드 애플스’는 다큐멘터리적 사실성 대신 우화적 과장을 택한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거리를 두고, 편집은 감정을 절제한다. 학부모 총회 장면, 교장실 면담 장면 같은 익숙한 학교 코미디의 문법을 빌려오면서도, 종국에는 그 문법을 배반한다. 관객은 웃다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지금 이 상황이 정말 웃을 일인가.
 
문제는 각본이다. 초반의 대담한 설정이 후반부에서 힘을 잃는다. 어른 캐릭터들의 동기는 자주 자의적으로 느껴진다. 경찰과 학교 관계자들의 무능은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몇몇 장면은 개연성보다 충격을 우선한다는 인상도 지우기 어렵다.
 
문제 학생을 힘으로 눌러 교실 질서를 되찾는다는 얼개만 보면 이 영화를 ‘영국판 참교육’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최근 한국 넷플릭스 1위에 오른 드라마 ‘참교육’은 교권보호국이라는 조직이 학교 폭력과 문제 학생을 법 대신 힘으로 응징해 질서를 되찾아준다는 설정이다. 제도가 해결 못하는 사건을 대신 풀어준다는 통쾌함 때문에 화제를 모았고, 실제 사건을 참고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논쟁도 함께 따라왔다.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이런 콘텐츠의 인기 뒤에 깔려 있다.
 
‘참교육’의 콘텐츠가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기는 데 방점을 찍는다면, ‘배드 애플스’는 그 통쾌함에 동조하는 관객 자신을 겨눈다. 대니가 사라진 뒤 모두가 편해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 영화는 슬쩍 관객 쪽으로 잣대를 들이댄다.
 
교사 소진, 문제 학생, 흔들리는 공교육 시스템은 지금 세계 어디서나 뜨거운 화두다. 교사들이 줄줄이 교단을 떠나고,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하는지를 두고 학부모와 학교가 날마다 충돌한다. ‘배드 애플스’가 던지는 질문은 어차피 답이 없다. 다만 편한 답을 바라는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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