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원유 수입 조절로 유가 좌우…이란전서 에너지 패권국 부상
세계 최대 정유국 입지 활용해 정제유 수출 제한으로 힘과시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중국이 이란전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에너지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면서도 막대한 양의 원유를 비축하고 정유 설비를 확충하는 한편 대체 에너지 투자도 확대해 분쟁 상황에서도 수입량을 조절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중국이 원유 수입량을 조절해 글로벌 유가를 좌우하는 힘을 확보했다고 진단했다.
NYT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6개월간 중국의 원유 수입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나 급감했다.
중국은 1993년 원유 순 수입국이 된 이후 비축유를 늘리는데 안간힘을 써왔고, 현재 중국의 비축량은 파악 가능한 전 세계 원유 재고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차 운행 증가 등으로 원유 수요가 크게 줄면서 비축분을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다.
여기에 탄탄한 고속철도망과 태양광 패널·배터리 분야에서의 독보적 위치, 석유 대신 석탄을 화학물질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등도 영향을 줬다.
중동산 원유에 의존해온 다른 국가들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원유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중국은 이런 외풍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중국의 이런 원유 수입 조절 능력은 곧바로 시장에 영향을 줬다.
중국이 수입을 줄이면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에도 당초 에너지 업계가 분석했던 것만큼 원유 가격이 치솟지 않았다.
골드만삭스 원유 연구 책임자인 댄 스트루이븐은 8월 말 기준 원유 가격은 중국이 전쟁 전 수준대로 계속 수입했다면 형성됐을 가격보다 배럴당 약 10달러가량 낮았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의 에리카 다운스 수석연구원은 "이는 아무도 중국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힘"이라며 "앞으로 중국이 새롭게 얻은 이런 힘을 어떻게 활용할지 지켜보는 일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적인 정유 대국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이란 전쟁 초기부터 정제연료인 제트유, 휘발유, 디젤유 등의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힘을 과시해왔다.
올봄 공급이 특히 부족했던 시기 베트남이나 태국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에는 정제유를 수출하고 호주나 필리핀 등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대립해온 국가에는 수출을 제한한 것이다.
NYT는 이런 행보가 중국이 에너지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물론 중국이 원유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산유국과는 차이가 있다.
다만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이 원유가격 변동성을 완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비축을 늘리면 유가가 오르고 비축을 줄이면 가격 상승 압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때문에 향후 몇 달간 중국이 얼마나 많은 원유를 수입할지, 또 그중 얼마를 정제해 수출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담당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메이건 오설리번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 지난 수십년간 얼마나 큰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는지 생각해보라"며 "만약 중국이 수요 측면에서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중국에 특정 행동을 요청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신영
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