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반세기 이상을 살아온 내 삶터 미국으로 나의 모국 한국과 엄마를 모셔 온다. 로스앤젤레스 여름의 열기는 엄마 냄새를 실어 나르고 있다. 엄마를 코로 만나고, 가슴으로 알아뵌다. 한 엄마가 아니라, 두 엄마이다.
삼팔따라지 평안북도 출신인 한 엄마는 평생을 디아스포라로 사셨다. 올해로 한국이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지 82년째이고, 6·25동란이 있은 지 77년째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에 앳된 처녀였던 그 엄마는 평안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평안도로, 평안도에서 다시 서울로 이동했어야 했다. 엄마는 고향과 친척을 뒤로하고 떠났다. 그랬던 그녀에게, 서울은 제2의 고향이 되지 못하였다.
자식들이 하나씩 둘씩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다시 이산가족이 된 우리 집안. 특히 엄마에게, 서울은 고향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평안도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이산가족의 삶에 종지부(終止符)를 찍기로 하고, 미국이라는 넓디넓은 큰 나라에서 자식들과 함께하고자 다시 한번 이동한다.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받아들이었다. 한국 땅에서의 디아스포라의 삶과는 무척 다른 이방인이 넘어야 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장벽을 허물지는 못하였지만, 이역(異域) 땅에서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잘 사시다가 세상과 영원히 하직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하신 그곳은 이념 같은 것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세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거기에도 여러 종류의 언어가 있으려나 궁금하다.
다른 한 엄마는 세상이 두 클래스로 구분되어 있다는 각인된 동아줄을 끊지 못하셨다. 세상에는 두 개의 길만이 있고, 그중에 고등교육을 받은 혈통이 제반 문제의 해결사가 되고, 다른 그룹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믿으셨다. 문제가 생기면, 고등교육을 받은 양반 그룹이 방패막이가 된다고 생각하던 분이었다. 그녀에게 전능하신 분, 하느님은 없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도 피하기를 거부했다. 그 파도는 양반에 의한 파도가 아니었기에, 피하지 않아도 되고 설사 파도가 쳐도 양반이 막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방패막이가 모래성이었음을 여인은 알지 못했던가. 디아스포라 미국인이 되어 눈앞에서 사라진 그녀가 세상에 데리고 나온 첫 생명줄을 따라서 나설 수는 없었다. 애초에, 영원한 이별이라 가슴에 담고, 태평양 넘어 동쪽을 바라보며 해바라기로 사셨다.
이 두 엄마는 당신들 나름대로 딸인 나를, 사위인 내 남편을, 며느리인 나를, 며느리의 남편이 된 아들을 아꼈다. ‘사랑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어본 적이 없던 두 여인은 한 여아(女兒)와 한 남아(男兒)를 가슴에 품었다.
여름이 오면, 두 여인의 냄새를 맡는다. 한 여인은 모시 적삼 앞 틈새로 시큼털털한 땀내를 캘리포니아 사막의 여름 바람에 태워 보내온다. 세상의 모든 불편함과 허물이 마치 당신 것인 양 치마폭에 감싸 안은 다른 한 여인은 모시 치마에 먹일 풀을 다시 쑤고, 그 풀 향기를 보내온다. 몇 세대를 물려받은 저울질할 수 없는 외로움을 풀 먹인 치마폭에 싸 안을 것이다.
여름이 왔다. 한 엄마의 열무김치를 만들어 보자. 심심한 열무김치 국물에 얼음을 띄우고, 가는 국수를 말아서 훌훌 먹어보자. 다른 한 엄마의 얼갈이 열무김치도 흉내 내어보자. 풋고추 썰어 넣고 자박자박 버무려 만든 열무 풋배추 김치를 방금 지어낸 흰밥에 얹어 먹어보자. 노란 참외의 옷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드러내게 하자. 쓰다 놓고 간 나이 먹은 푸른 무늬 큰 접시에 올리어 주자. 쩍 소리 내고 자신을 내쳐버린 수박의 새빨간 붉은 가슴을 늙은 싸리나무 소쿠리에 앉혀주자.
얼갈이 열무김치, 열무 풋배추 김치를 만드는 실습이 끝나고 맛이 들 때쯤에 손주들을 보러 비행기를 탈 계획이다. 열무를 몇 단 사서 가방에 넣어 부칠까, 싶기도 하다. 그 애들이 사는 곳에 열무는 없을 것이다. 먹는 것에 집착하지 말 것과 반찬 투정은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내가 꼰대 나이가 되니 먹거리를 가리고 있다. 좀 어울리지 않는다.
요리는 화학실에서 하던 실험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나에게는 하나의 실험이다. 맛으로 성공과 실패를 따지자면 성공률은 50%다. 실험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더 흥미롭다. 손주들이 보는 데서 할 열무김치 실험은 무모할지 모른다. 나의 가늠할 수 없는 열무김치 실험 성공도(成功度)와 세대를 거른 한국 음식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치가 큰 변수이기 때문이다. 손주들은 혼혈(混血)이고, 나의 열무김치의 맛은 혼미(混味), 또는 합미(合味)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맛의 하모니보다는 맛과 맛이 서로 경계를 넘어 주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