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젝스키스 출신 고지용과 가정의학과 전문의 허양임의 이혼 후 양육비·면접교섭 갈등이 알려졌다. 고지용은 아들과의 만남이 부당하게 제한됐다고 주장한다. 허양임은 이혼 당시 정기적인 면접교섭 약정이 없었고, 자신이 먼저 법원에 심판을 청구했으며 그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양육비에 관해 고지용 측은 투병 등으로 지급하지 못했으나 최근 지급을 재개하고 미지급액의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고 설명한다. 보도만으로 어느 쪽의 잘못인지, 두 사람이 돈과 만남을 맞교환 조건으로 내걸었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함께 물어야 할 질문은 있다. 무엇이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가.
양육비와 면접교섭은 법적으로 별개다. 양육비는 아이를 만나는 입장료가 아니고, 면접교섭은 돈을 낸 부모에게 주는 포상이 아니다. 민법은 자녀에게도 부모를 만날 권리를 인정한다. 하나는 아이의 생활을 지탱하고, 다른 하나는 부모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별개의 권리와 의무지만 지향하는 목적은 같다.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복리다.
각각의 의무를 어기면 제재가 따른다. 양육비나 면접교섭에 관한 법원의 이행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양육비 정기 지급 이행명령을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세 차례 이상 지급하지 않으면 최장 30일의 감치도 가능하다. 다만 면접교섭 불이행 자체는 감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제재는 제도의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양육비를 받아내는 것도, 면접교섭 일정을 정하는 것도 결국 아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는 일을 비난할 이유는 없다. 다만 법적 다툼에서 이기는 것과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자녀의 복리’는 판결문 속 추상적 문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아이가 제때 밥을 먹고, 아플 때 치료받고, 학교에서 돌아와 편히 쉬는 일이다. 부모와 만나기 전 불안해하지 않고, 만나고 돌아온 뒤 다른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일이다. 양육비를 얼마 보냈는지, 한 달에 몇 번 만났는지를 넘어 그 돈과 시간이 아이의 생활을 얼마나 안정시켰는지 살펴야 한다.
양육하는 부모의 돌봄 부담을 외면한 채 만날 권리만 주장해서도 안 된다. 직접 키우지 않는 부모라고 아이에게 덜 소중한 존재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부모에게 편리한 일정이 아니라 아이의 수업과 휴식, 건강을 고려한 일정을 정해야 한다. 아이를 데려오는 순간부터 돌려보내는 순간까지 부모의 감정보다 아이의 하루가 먼저여야 한다.
물론 아이를 위해 무조건 참고 만나게 하라는 뜻은 아니다. 폭력이나 학대로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법원에 면접교섭의 제한이나 배제를 구해야 한다. 아이가 만남을 두려워하면 그 이유를 먼저 듣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되 아이에게 어느 부모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무거운 책임까지 떠넘겨서는 안 된다.
부모에게도 각자의 억울함은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조건, 내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조건을 아이의 성장 앞에 세워서는 안 된다.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한다고 엄마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고, 엄마를 사랑한다고 아빠를 버리는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설지 고르는 의무가 아니라 눈치 보지 않고 사랑할 자유다.
이혼 가정의 아이를 결핍의 시선으로 보아서도 안 된다. 부모가 함께 사는지와 아이가 존중받으며 자라는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형식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가족 안에서도 아이의 안전과 애정, 돌봄이 이어지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토대는 이혼하지 않은 부모라는 외형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어른들의 태도여야 한다.
부모는 이혼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는 시간까지 멈출 수는 없다. 양육비와 면접교섭 제도는 헤어진 부부에게 승패를 나누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상처를 회복하고 타인을 믿으며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부모가 끝내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이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