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시즌이 본격화되면서 12학년 학생들은 지원서와 에세이 작성에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매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반복해서 보는 장면이 있다. 활동도 많고 성적도 좋으며 봉사와 리더십 경험도 충분한데, 막상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뜻대로 되지 않아 썼다 지웠다 하는 학생들이다. 대학이 에세이를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은 학생의 인성, 공동체를 위한 헌신, 학업적 열정과 지적 호기심, 재능과 관심 분야를 통해 어떻게 성장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좋은 이야기를 뽑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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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은 많지만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 본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이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 경험의 의미를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봉사 시간, 연구 프로젝트, 클럽 회장, 인턴십, 경시대회 등은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그 경험이 너를 어떻게 바꾸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 입시 준비 과정에서도 학생들은 성취와 결과를 관리하는 데 익숙하다. 무엇을 했는지, 몇 시간을 했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는 기억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이 불편했고, 무엇을 새롭게 질문하게 되었으며, 어떤 생각이 달라졌는지는 정리하지 않는다. 결국 경험은 많지만 자기 이해는 얕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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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자기 이해가 아니라 자기 홍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제는 에세이를 또 하나의 ‘스펙 설명서’로 착각하는 데 있다. 학생들은 흔히 “어떤 활동이 가장 대단해 보일까요?”, “이 상을 쓰는 것이 좋을까요?”, “해외 봉사를 쓰면 더 강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대학은 활동 목록에서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 이미 확인한다. 에세이에서는 그 활동 뒤에 있는 사람을 알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은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좋은 글이 된다고 생각하고, 실패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평범하지만 진짜 자신의 이야기는 버리고, 성공적이고 완벽해 보이는 이야기만 선택한다. 그 결과 많은 에세이가 내용은 훌륭해 보여도 정작 학생의 목소리와 인간적인 깊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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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하나의 성장 방향으로 연결하지 못한다
세 번째 문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여러 활동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연구는 연구, 봉사는 봉사, 음악은 음악, 리더십은 리더십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좋은 지원서는 각각의 활동을 많이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들이 한 학생의 관심과 가치관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학생은 생물학 연구와 의료봉사, 학교의 프리메드 클럽 활동이 모두 ‘사람의 건강과 접근성’이라는 하나의 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 또 다른 학생은 글쓰기, 학생 신문, 지역사회 캠페인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일’이라는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활동의 숫자가 아니라 그 활동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학생의 지적·인간적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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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전에 ‘경험 정리’부터 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에게 가장 먼저 시켜야 할 것은 에세이 초안을 쓰는 일이 아니다. 먼저 자신의 경험을 해체하고 다시 연결하는 경험 정리가 필요하다. 지난 3~4년을 돌아보며 내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고든 주제는 무엇인지, 고등학교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누구에게 책임감을 느껴 행동했는지, 실패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를 적어 보는 것이다.
그다음 각각의 경험에서 ‘사건-갈등-성찰-변화-앞으로의 방향’을 찾아 연결하면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어떻게 성장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입시 에세이는 “나는 리더십이 있다”, “나는 열정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글이 아니라, 한 장면과 선택, 한 번의 실패와 변화 과정을 읽은 입학사정관이 스스로 “이 학생은 질문을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이구나”, “이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이것이 입시 에세이에서 말하는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의 의미이다.
결국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자신이 살아온 경험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 왔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보여주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