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이 있다. “사내놈이 그까짓 일로 우냐”는 핀잔보다야 품격을 갖추긴 했지만 ‘남성은 울면 안 된다’는 가부장적 교리를 일찌감치 내재화시키려는 억압적 표현이다. 이제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신라면의 광고 카피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역시 남자의 눈물은 ‘이상 현상’이란 걸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다 큰 남자가 흘리는 눈물에 대단한 서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북중미 월드컵 축구 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스페인에게 패한 뒤 눈물을 흘리자 수많은 축구 팬은 ‘전설의 눈물’이라며 함께 슬퍼했다. 반면 같은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 팬의 원흉으로 떠오른 홍명보 전 축구 대표팀 감독에겐 “눈물이라도 흘렸으면 국민이 용서했을 것”(배우 강부자)이란 꾸지람이 뒤따랐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는 게 능사도 아니다. 홍 감독이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와 진짜 눈물을 흘렸다면 여야 의원들은 “뭘 잘했다고 우냐”라고 힐난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복잡한 눈물의 정치학은 김승원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어지간한 순정남의 사랑 고백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보고 싶어서 눈에서 눈물이 나네”라고 성공한 사업가인지, 유흥주점 사장인지에게 속삭였던 김승원은 막상 인사청문회에선 “대학 때 발달장애 아이들과 자원봉사를 하면서 같이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했다”고 아내 얘기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무엇이 진짜 그의 눈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부남의 눈물의 의미가 이렇게 급변침하다니 놀라울 정도였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오빠’는 아내에 대한 순애보적 사랑의 추억을 전 국민 앞에서 급고백하며 극전 반전을 노렸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정치의 세계에서 오빠의 눈물은 ‘알빠노’였던 것이다.
눈물이 많은 김승원은 후보직 사퇴 때는 막상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사장이 보고 싶을 때 ▶청문회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 ▶문과라서 죄송할 때 이미 눈물 카드를 써버린 그는 남자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삼세번 원칙은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