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출근 시간대에 직장인들이 런던 브리지를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년 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절반 이하로 추락한 지역에 사는 인구가 33억명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인구 5명 중 2명꼴이다. 이 가운데 7억3000만명 이상은 1인당 실질 GDP가 뒷걸음질하면서 생활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24년 1인당 실질 GDP 증가율이 10년 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국가와 해외 영토는 모두 80곳으로 집계됐다. 2014년 68곳에서 12곳 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과 러시아, 독일, 브라질 등 경제 규모와 인구가 큰 국가들이 최근 잇따라 이런 ‘불행한 클럽’에 합류했다고 분석했다. 선진국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까지 저성장에 발목을 잡히면서 경제 성장의 둔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해당 지역의 인구는 2014년 11억명으로 세계 인구 6명 중 1명 수준이었다. 10년 뒤인 2024년에는 33억명으로 세 배가 됐다. 세계 인구 5명 중 2명이 과거보다 크게 낮아진 성장률을 체감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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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도 개도국도 성장 동력 약화
저성장의 원인은 국가마다 다르다. 캐나다 같은 선진국부터 콩고민주공화국(DRC) 같은 최빈국까지 경제 여건과 인구 구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국민의 생활 수준이 악화될 수 있다는 위험은 공통적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선진국에서는 생산성 둔화와 이민 증가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민자 유입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단기간에 1인당 성장률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인 독일의 연평균 실질 소득 증가율은 0.6%에 그쳤다.
자원 수출에 의존해 성장했던 개발도상국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브라질처럼 풍부한 천연자원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국가는 원자재 호황이 끝난 뒤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루과이와 칠레 등 수출 주도형 국가 역시 소득 증가세가 정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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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보다 잘산다” 공식 흔들려
장기간 이어진 성장 둔화는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오랜 사회적 기대까지 흔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저성장 시대를 경험하며 성장한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시민과 국가 사이의 ‘사회계약’도 다시 쓰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박탈감이 정치적 선택에도 영향을 주면서 각국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저스틴 제스트 조지메이슨대 교수 연구진이 지난해 유럽인 2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0% 이상이 ‘우리 세대는 경제적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인식이 가장 강한 연령층은 50대였으며 18~34세가 뒤를 이었다.
연구진은 과거보다 현재의 경제적 상황이 나빠졌다고 느끼는 이른바 ‘향수성 박탈감(nostalgic deprivation)’이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이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55%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도 경제적 낙관론이 빠르게 약해졌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10년마다 실시하는 조사에서 ‘열심히 일하면 늘 보상받는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2014년 62%에 달했다. 2023년에는 28%로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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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정치 불안→다시 저성장 ‘악순환’ 우려
경제 성장의 둔화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벨기에 루벤대 연구진은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경우 유권자들이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집권 세력에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브라질을 사례로 들었다. 2022년 당시 16~34세 청년층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의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생활 수준의 정체가 이어지면서 다음 달 대선에서는 우파 경쟁자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지지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정치 불안정은 성장 촉진을 어렵게 하고, 그래서 더 큰 불안정을 만든다. 10년 뒤 더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